장헌문
蔣憲文1870. 5. 9 ~ 1929. 1. 26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영일 의병부대
- · 산남 의병부대
- · 신돌석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1870년 5월 9일 경상북도 영일군(迎日郡) 지행면(只杏面) 죽정리(竹井里)에서 장도형(蔣道亨)의 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아산(牙山)이다. 자는 무장(武章)이고, 호는 뇌헌(磊軒)이다. 1896년 영일에서 창의한 의병부대의 중군장으로 활동하였으며, 후기의병에서는 1906년 5월 창의를 주도하여 의병장에 추대되었다. 1908년 1월 13도창의대진소(十三道倡義大陣所)의 서울진공작전에 참여하기 위해 산남(山南) 의병부대 및 신돌석(申乭石) 의병부대와 연결하여 경북 동해안 일원에서 활동하였다. 1895년 을미사변과 단발령을 계기로 영남지방을 비롯하여 전국 각처에서 의병이 봉기하자, 1896년 영일군에서 창의한 의병부대의 중군장으로 활동하다가 의병 해산의 조칙에 따라 해산하였다. 1906년 5월 김재홍(金載洪)·김복선(金福善) 등과 함께 200여 명의 의병을 모집하여 재차 창의하였다. 의병장에 추대되어 가산을 기울여 군비와 군량을 마련하고, 장기(長鬐)를 비롯하여 연일(延日)·경주(慶州)·죽장(竹長)·기계(杞溪)·흥해(興海)·청하(淸河)·영해(寧海)·울진(蔚珍) 등지를 전전하며 일본군을 공격하였다. 1907년 10월 영천(永川)의 정환직(鄭煥直)이 지휘하는 산남의병부대와 합세하여 일본군에 대응하는 한편, 1908년 1월 영해의 신돌석과 함께 13도창의대진소의 서울진공작전에 참여하고자 하였으나 실행하지 못하였다. 1908년 3월부터 5월까지 장기 및 경주 일원의 산간을 누비며 군수품을 수집하고 의병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같은 해 5월 7일 장기군 내남면(內南面) 공동(公洞)에서 대구경찰서 파견 제1변장순사대(第一變裝巡査隊) 순사 아사노(淺野)의 습격을 받고 김재홍·김종호(金宗號)·김복선·이태이(李太伊)·정만춘(鄭萬春)·최봉학(崔鳳鶴)·이무범(李武範)·최용이(崔用伊)·장치일(張致一) 등과 함께 붙잡혔다. 대구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이른바 강도살인죄로 기소되었다. 1908년 10월 7일 대구지방재판소에서 징역 10년을 받았다.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른 뒤, 1918년 2월 풀려나 영일군 구룡포(九龍浦)에 이주하여 살았다. 1929년 1월 26일 옥고의 여독으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권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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