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鎭燾
鄭鎭燾1852. 3. 9 ~ 1903. 12. 30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심성지 의병부대(청송의진)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04)
관련 사건
- · 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04) 1852년 3월 9일 경상북도 청송군(靑松郡) 부남면(府南面) 대전리(大前里)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정지득(鄭址得)이고, 어머니는 안동 권씨(安東權氏)이다. 백부 정지신(鄭址信)에게 출계(出系)하였다. 본관은 경주(慶州)이고, 자는 형백(亨伯)이며, 호는 송담(松潭)이다. 『경주정씨양경공파세보(慶州鄭氏良景公派世譜)』에는 정진호(鄭鎭鎬)로 기록되어 있다. 도량(度量)이 넓고 용맹하며 말을 잘하였다고 전해진다. 조선조 태종(太宗) 때 문과에 급제하고 현감(縣監)을 역임한 청백리 정길(鄭佶)의 후예이다. 1896년 심성지(沈誠之) 의병부대[청송의진(靑松義陣)]에 참여해 진무장과 부장 등을 역임하면서 항일활동을 전개하였다. 1896년 3월 16일 청송의진이 의병장 심성지(沈誠之)를 비롯하여 부장 조성박(趙性璞), 중군장 김대락(金大洛), 좌익장 김상길(金相吉), 우익장 남두희(南斗凞) 등을 추대해 지휘부의 진용을 갖출 때, 진무장(鎭撫將)에 임명되었다. 같은 해 5월 12일 관군에게 패한 의성의진(義城義陣)과 이천의진(利川義陣)이 청송으로 들어왔다. 심성지 의병부대는 5월 13일 이들과 의병부대를 합쳐 의성연합의진(義城聯合義陣)을 결성하고, 5월 14일 감은리전투(甘隱里戰鬪)를 수행하였다. 이때 진무장으로 중군장 김대락, 소모 심능장(沈能璋), 참모 오세로(吳世魯), 서기 윤도혁(尹道爀), 외방장 안병룡(安秉龍), 군사 이경식(李景植), 집사 윤경승(尹景昇) 등과 함께 포군 60명을 거느리고 출정하여 관군 7~8명을 사살하는 등의 전과를 올렸다. 5월 24일 심성지 의병부대는 국왕의 해산 칙유문(勅諭文)을 받고 다음날인 5월 25일 청송군 관내 8개면으로 진을 나누어 면군체제(面軍體制)로 전환하였다. 이때 부장(副將)으로 임명되었다. 이후 6월 18일 경주연합의진(慶州聯合義陣)의 경주성전투(慶州城戰鬪), 7월 14일 영덕연합의진(盈德聯合義陣)의 영덕전투(盈德戰鬪)에 참여하는 등의 항일투쟁을 전개하다가 청운(靑雲)에 주둔하였다. 7월 20일 이미 7월 16일 영덕에서 청송으로 들어와 부남면(府南面) 화장동(花場洞)에 진을 치고 있던 이천의진이 관군의 공격을 받아 크게 패하였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에 이천의진을 지원하기 위해 청운에서 화장동으로 행군하다가, 부동면(府東面) 상평(上坪)의 화전등(花田嶝)에서 기습하는 관군과 전투를 벌였다. 이 화전등전투에서 동료 6명이 전사하는 등 패전하였고, 이후 의병부대 해산 이후에는 보현산(普賢山)으로 피신하였다. 1903년 사망한 후 다음해인 1904년 그를 기리기 위해 송담계(松潭契)가 결성되었고, 1969년에는 부남면 대전동 뒷산 언덕에 송담정(松潭亭)이 건립되어 추모제를 지내고 있다. 한편 저서로 『송담집(松潭集)』이 있었으나, 현재 분실된 상태이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4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권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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