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관
金基寬1886 ~ 1920. 11. 19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독립단
포상 정보
- · 애국장(1998)
관련 사건
- · 간도참변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8) 평안북도 벽동군(碧潼郡) 오화면(吾化面) 오하동(吾下洞)에서 태어났고 일본군에게 피살된 1920년 당시 34세인 점으로 미루어 1886년에 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1919년 3·1운동 뒤 서북간도에는 수많은 항일 단체와 독립군단이 조직되었다. 이는 1910년 일제의 강제 병합을 전후하여 국내에서 많은 망명 인사가 간도로 건너가 민족학교와 무관학교를 세워 독립군을 양성하는 등 향후 다가올 일제와의 독립 전쟁에 대비하여 준비해온 독립운동 기지 건설 운동의 결과였다. 한말 의병운동 계열의 민족운동가인 박장호(朴長浩)·조맹선(趙孟善)·백삼규(白三奎) 등이 서간도 이주 초기 조직된 한인 사회의 자치단체인 보약사·향약사·농무계 등을 통합하여 1919년 4월 15일 류허현(柳河縣) 삼원포(三源浦) 서구(西溝) 대화사(大花斜)에 본부를 둔 대한독립단을 조직하였다. 대한독립단은 군자금 및 단원 모집에 나서 그해 12월 만주와 국내에 수많은 지단과 지부를 설치하였다. 만주에서는 한인 100호 이상 지역을 구(區)로 정하고 구관(區管)을 두었고, 10구마다 단장을 임명하였으며 그 아래 부단장·총무·외교장·참모장·통신장 등의 간부를 두었다. 이때 펑톈성(奉天省) 지안현(輯安縣) 피조구상구(皮條沟上溝)에서 지단의 총무로 활동하였다. 대한독립단을 비롯한 서북간도의 독립군단들이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너 국내에 들어와 지부를 조직하고 군자금을 모집하는 한편, 국경지대의 일본 관청과 관헌을 공격하는 등 맹렬한 국내 진공 작전을 벌였다. 이에 일제는 1920년 8월까지 ‘간도지방불령선인초토계획’(間島地方不逞鮮人剿討計劃)을 세우고, 그해 10월 중국 마적을 매수하여 조작한 훈춘사건(琿春事件)을 구실로 한국주차군 제19사단을 주력으로 하는 토벌대를 북간도 일대에 집중 투입하였다. 동시에 남만주에 주둔하고 있던 관동군에서 스키야마(杉山) 대좌가 지휘하는 철령(鐵嶺) 보병 제19연대와 메나카(目中) 중좌가 지휘하는 공주령(公主領) 주둔 기병 제20연대 소속의 부대를 서간도에 투입하여 서간도의 독립군과 독립 단체를 토벌하게 하였다. 이들 부대는 친일 단체인 보민회를 앞장 세워 1920년 10월 20일 이후 싱징(興京)·퉁화(通化)·환런(桓仁)·관뎬현(寬甸縣) 등지를 차례로 돌며 토벌 작전을 전개하였다. 이 과정에서 무려 500여 명의 한인을 체포하고 그 가운데 81명을 독립운동을 했다는 죄명으로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 무렵 지안현 피조구상구에서 대한독립단 지단의 총무로 활동하다가 1920년 11월 18일 체포되어 이튿날인 11월 19일 피살 순국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8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윤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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