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曹功谷

曹功谷

미상 ~ 1908. 3.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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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曹功谷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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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청송(靑松)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청송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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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201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10) 경상북도 청송(靑松) 출신이다. 자료의 한계로 출생시기는 확인되지 않는다. 정용기(鄭鏞基)·정환직(鄭煥直) 의병부대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1905년 일제에 의한 을사조약 강제 이후 은둔하고 있던 정환직이 고종의 밀지를 받고 아들 정용기를 불러 의병을 일으켰다. 1906년 3월 경북 영천(永川)에서 정용기 의병장이 산남의진(山南義陳)을 일으켰다. 산남의진은 1906년 4월 28일 정용기가 경주진위대(慶州鎭衛隊)에 체포당한 후 중군장 이한구(李韓久)가 이끌다가 희생자가 늘어나자 그해 7월 무렵 해산되었다. 1906년 9월에 고종의 특사로 풀려난 정용기가 1907년 4월 재기하자, 조공곡은 청송지역 모병을 담당한 남우팔과 이세기(李世紀) 등을 따라 의진에 들어가 포술장(砲術將)으로 활동하였다. 그 뒤 영해·청하(淸河)·청송·포항(浦項) 등 여러 곳에서 일본군과 교전하였다. 1907년 10월 8일 본부 부대가 청하군(淸河郡) 죽장면(竹長面) 입암(立巖)에서 일본군 수비대와 격전을 벌였으나 크게 패하면서 정용기, 중군장 이한구(李韓久), 참모장 손영각(孫永珏) 등 비롯한 많은 장령들이 사망하였다. 정용기 사망 이후 정환직이 남은 군사를 수습하여 다시 의병부대를 이끌었다. 이때 정환직 휘하에서 포군초장(砲軍哨長)과 부장(副將)이 되어 1907년 10월 29일 흥해(興海)를 공격하였다. 여기서 순사주재소와 우편취급소를 불태우고 일본인 순사 등 3명을 처단하였다. 1907년 12월 5일 영덕(盈德) 유암(酉岩)전투를 거쳐, 12월 7일 영덕읍을 공격하였으나 일본군에게 포위당하고 말았다. 정환직은 12월 8일 청하 각전(角田)에서 부대를 해산하고 병사들에게 개별적으로 관동(關東)으로 북상할 것을 명하였다. 그러나 정환직이 청하군(淸河郡) 북면(北面) 고천(高川)에서 일본군에게 잡혀 사망하였다. 이후 청송으로 돌아와 은신하였으나, 1908년 3월 17일 일제 경찰에 붙잡혔고, 25일 오후 대구경찰서로 이송하는 도중 탈출을 시도해 총에 맞아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권영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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