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昌德
昌德1917. 8. 10 ~ 1945. 3. 2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죽마계(竹馬契
- · 도쿄)
포상 정보
- · 애족장(1991)
관련 사건
- · 죽마계(동경)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1) 1917년 8월 10일 함경남도 갑산군(甲山郡) 남부리(南部里)에서 태어났다. 중산층 가정에서 성장하여 갑산공립보통학교에서 수학한 후 경성부에 있는 사립중등학교에 입학하였다. 1935년 3월에 3학년을 수료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사립 스기나미중학교(杉並中學校)를 거쳐 주오대학(中央大學) 법학부에 진학하였다. 1940년 3월 니혼대학(日本大學)의 안병익(安秉翊)과 메이지대학(明治大學)의 김사복(金思宓) 등과 함께 도쿄(東京) 시내 김사복의 방에 모여 독립운동을 결의하고 지속적인 독립운동을 전개하기 위하여 항일결사 죽마계(竹馬契)를 조직하였다. 한인 유학생을 중심으로 구성된 죽마계는 일제의 감시를 피하기 위하여 표면적으로는 향촌 전래의 ‘계(契)’라는 모임 형태를 빌려왔다. 문맹 퇴치, 출판사업을 통한 민족 계몽, 민족의식 고양을 목표로 삼았고, 계 조직을 활용해 경제력 향상을 도모함으로써 독립 기반을 조성하고자 하였다. 죽마계에서 간사를 맡아서 활약하였으며, 동지 규합을 통해 조직의 세를 확장하는 것과 계원들 간의 단합 도모에 힘을 쏟았다. 이후 구철회(具喆會)·김홍기(金泓沂) 등을 동지로 규합하였다. 죽마계는 장래 활동 무대를 국내로 넓히기 위해 서울에 본부를 두고 도쿄에 지부를 두기로 하였다. 매년 7월 18일 서울에서 정기총회를 갖기로 하였으며 그 밖의 여러 가지 규약을 정하여 조직을 정비하였다. 1940년 7월 15일 안병익·김사복·이해룡(李海龍) 등과 서울 정릉(貞陵) 약사사(藥師寺)에서 모여 일제 식민 통치의 부당함을 역설하고, 창씨개명을 하지 않기로 결의하였다. 7월 18일 서울 청량리(淸凉里) 청량사(淸凉寺)에서 열린 제1회 총회에서 계장에 김사필, 서울 본부위원에 안병익·안종식을 결정하였고, 이해룡과 함께 도쿄의 지부위원으로 선임되었다. 이때 한글 신문의 강제 폐간에 반대하는 항거를 결의하였다. 죽마계가 조직을 강화하기 위해 연구부와 사업무를 설치할 때 연구부 부원으로 활동하였다. 1941년 6월에는 김사복·이해룡 등과 함께 일본 가나가와현(神奈川縣) 카이힌(海濱)호텔에서 여운형(呂運亨)으로부터 제1차 세계대전 후의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한 독립운동상황을 전해 듣기도 하였다. 그러던 중 죽마계가 일제 경찰에 발각되어 불온단체라는 이유로 회원 전원이 붙잡혔다. 1943년 3월 도쿄형사재판소에서 징역 4년을 받고 옥고를 겪다가 1945년 3월 2일 옥중에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족장(1968년 대통령 표창)을 추서하였다. ⋮최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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