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수
田永秀1924. 12. 22 ~ 1983. 2. 17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충성회
- · 국수대중당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관련 사건
- · 충성회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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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0) 1924년 12월 22일 경상남도 의령군(宜寧郡) 용덕면(龍德面) 가락리(佳樂里)에서 태어났다. 일제의 강요로 전중영수(田中永秀)로 이름을 바꾸었다. 1939년 3월 일본으로 도항하여 견습공, 신문배달을 하면서 고학생으로 생활하였다. 한국인이 비참한 생활환경에 있는 것은 일본이 내선일체 등의 감언이설로 착취적 정치를 하기 때문이므로,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독립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1941년경 일본 오사카시(大阪市) 동정천구(東淀川區) 본장서통(本庄西通)에 거주하면서 일본 오사카야간중학교 2부 2년생으로 편입한 뒤 남상순(南相淳)·조경복(趙景福)·동방옥모(東坊沃模)·송촌대교(松村大敎) 등을 동지로 규합하였다. 동지들이 모이자 운동의 중핵이 될 조직을 결성하기 위해 국수대중당(國粹大衆黨)에 입당하여 조직 결성에 필요한 경험과 정보를 수집하였다. 1941년 6월부터 1942년 12월까지 30여 차례에 걸쳐 회합하고, 독립운동에 헌신할 것을 결의하는 비밀결사인 충성회(忠誠會)를 조직하였다. 충성회의 ‘충성’은 이왕(李王)에 대한 충성을 의미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당기 및 당원마크를 고안하기도 하였다. 태평양 전쟁 이후 영국과 미국의 본격적인 반격으로 일본의 패전은 틀림없다고 판단하고, 이와 같은 좋은 기회에 한꺼번에 봉기해서 독립을 달성하겠다는 계획으로 활동을 전개하고자 하였다. 일본이 패배하면 일본에서 동지 청년들을 규합해서 민중 폭동을 일으키려고 계획하였다. 1942년 12월 16일 충성회 조직이 발각됨으로써 동지들과 함께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조사를 거쳐 1944년 2월 오사카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4년을 받아 형무소에서 옥고를 겪었다. 1945년 8월 15일 광복이 되자 출옥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80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김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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