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임창전

任昌典

1880 ~ 미상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임창전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평북 벽동(碧潼)임시정부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북도 벽동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애족장(2010)

관련 사건

  • · 1919년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0) 평안북도 벽동군(碧潼郡) 송서면(松西面) 사서리(四西里) 출신이다. 1919년 판결문에 40세로 기록된 것으로 보아 1880년생으로 추정된다. 1919년 만세운동이 시작되자 벽동군 송서면에서도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이때 3월 15일 중국에서 귀국한 이근지(李根志)로부터 독립선언서를 받아 벽동군의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벽동군 만세시위는 3월 30일과 31일 이틀 동안 200~300여 명이 넘는 군중이 시가 행진을 벌이기 시작해 4월 12일까지 지속되었다. 이에 일제 경찰은 시위 시작 전부터 강제로 군중을 해산시켰다. 이 과정에서 시위 주도자로 붙잡혀서 8개월간 옥고를 겪었다. 출소 후 중국 콴뎬현(寬甸縣) 하루하(下漏河)로 건너갔다. 1920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벽동군 제1 선전대장(第一宣傳隊長)으로 활동하였다. 1921년 1월 중 문학빈(文學彬) 등 30여 명과 관뎬현 소황구(小荒溝)에서 독립운동 방향을 논의하였다. 그 결과 평북 벽동경찰서 산하 송서주재소(松西駐在所) 습격 계획을 세웠으나 실행 전 중국인 밀정의 밀고로 일제 경찰의 추격을 받게 되었다. 추격 과정에서 일제 경찰 3명과 총격전을 벌였다. 그 과정에서 왼쪽 팔꿈치에 총상을 입고 붙잡혀서, 신의주로 압송되어 징역 5년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은지⋮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