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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基烈

金基

1882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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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金基烈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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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북 벽동(碧潼)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북도 벽동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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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대한통의부

포상 정보

  • · 애족장(2009)

관련 사건

  • · 벽동군 운시주재소 습격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09) 평안북도 벽동군(碧潼郡) 대평면(大平面) 음평동(陰平洞)에서 태어났다. 일본 경찰에게 체포된 1923년 당시 41세인 점으로 미루어 1882년에 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대한통의부(통의부)에 가담하여 1923년 8월 통의부 의용군이 평북 벽동군 우시면(雩時面) 운시(雲時) 경찰주재소를 습격할 때 참여하였다. 통의부는 1922년 8월 서로군정서·대한광복군영·평안북도독판부 등 남만주의 주요 독립군단 대표들이 모여 남만주의 통합 독립군단으로 결성하였다. 통의부는 각 독립군단의 대원들을 통합하여 의용군으로 재편하였다. 의용군은 1개 대대 산하에 제1중대부터 5중대까지 5개 중대와 독립중대인 유격대 및 헌병대의 7개 중대로 다시 편제되었다. 의용군은 남만주에서 일제의 주구가 되어 독립군의 항일 투쟁을 방해하는 친일 세력을 척결하였다. 또한 수시로 국내로 들어와 경찰주재소 등 일제 관청과 관헌을 공격하고 군자금을 모집하는 활동을 하였다. 1923년 8월 의용군 제2중대 참사 정원일(鄭元日)·이광호(李光浩)는 군자금을 모집하고 일제 시설을 파괴할 목적으로 각각 대원 5명을 인솔하고 압록강을 건너 평북 벽동군으로 출동하였다. 8월 13일 의용군 제2중대원 김익봉(金翊奉)·김흥열(金興烈)·한서봉(韓瑞奉) 등은 벽동군 대평면(大平面) 음평동(陰平洞) 구장(區長) 양학준(梁學俊)을 찾아왔다. 양학준은 1919년 3·1운동 뒤 서간도로 건너가 독립군으로 활동하다가 1921년 9월 위장 귀순하여 친일파를 자처하며 은밀히 의용군과 연락을 취하고 있었다. 이날 밤 이들은 이곳의 통의부원과 함께 다음 날 운시주재소를 습격하기로 협의하였다. 이튿날인 8월 14일 밤 9시 의용군을 운시주재소 뒷산으로 인도하여 습격의 기회를 엿보다가 일제히 주재소를 향해 사격하였다. 주재소에 있던 오오세키(大關) 순사가 총에 맞아 즉사하는 등 갑작스런 습격에 일본 경관들이 혼비백산한 틈을 타서 주재소와 숙소에 석유를 뿌리고 불을 놓아 태워버렸다. 놀란 주재소 일본 순사들이 도망한 사이 주재소에 있던 장총 6자루, 군도(軍刀) 4자루 등 중요 무기를 획득하였다. 이어 대평면(大平面) 면사무소로 가서 공금 30여 원과 등사판을 압수하였고 의용군은 강을 건너 본대로 무사히 돌아갔다. 그러나 일본 경찰이 주재소를 습격한 의용군 등을 추적하고 연루자를 검거하던 과정에서 10월 19일 붙잡혔다. 1924년 1월 23일 함께 붙잡힌 양학준·김병열(金炳烈)·김영열(金泳烈)·김○필(金)○弼·김만홍(金晩洪)·김병서(金炳瑞)·김계주(金桂柱) 등과 함께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재판을 받고 징역 8년 형을 선고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평양복심법원에 항소하였다. 그해 4월 1일 1회 공판이 열렸고 5월 6일 열린 평양복심법원 공판에서 항소한 8명 가운데 김만홍과 김병서에 대한 선고만 있었다. 이로 미루어보아 항소가 기각된 것으로 판단된다. 징역 8년 형이 확정되어 신의주형무소에서 복역하다가 3년 11개월 만에 가출옥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윤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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