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賢相
賢相1924. 5. 14 ~ 1968. 3. 23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흑백당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1924년 5월 14일 경기도 고양군(高陽郡) 뚝도면(纛島面) 뚝도리(纛島里, 현 서울특별시 성동구 성수동)에서 태어났다. 중국 상하이(上海)의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가했던 이승호(李承浩)의 장남으로, 평소 항일독립정신이 투철한 분위기에서 성장하였다. 경복중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던 1939년 한용운(韓龍雲)·안재홍(安在鴻)·여운형(呂運亨) 등 민족지도자들의 감화를 받아 독립운동에 헌신하기로 결심하였다. 이후 같은 학교의 학우 장의찬(張宜燦)·홍건표(洪建杓)·주낙원(朱樂元)·성익환(成益煥)·명의택(明義宅) 등을 비롯해 중앙중학교의 남상갑(南相甲), 경성사범학교의 김성한(金盛漢)·이경춘(李慶春) 등과 함께 친일파 및 일본인 고관을 처단하기로 결의하고 동지를 물색하여 뜻을 같이 하는 학우들을 규합하였다. 졸업 후 1941년 9월 동지들 대부분이 여러 상급 전문학교에 진학했는데 본인만 진학하지 않았다. 그 즈음 이들과 함께 봉래동(蓬萊洞)에 있던 주낙원 집에 모여 정식으로 항일 학생 비밀결사를 조직하고 암흑에서 벗어나 자유를 찾을 때까지 투쟁한다는 의미에서 명칭을 흑백당(黑白黨)으로 정하였다. 또한 당의 부서를 나누고 선언문·강령·규약 등을 정하였는데, 이때 동지 9명과 함께 중앙집행위원(일명 등대원(燈台員))이 되었으며 동시에 당의 대표 즉 당수로 선임되었다. 당의 기본 강령으로 조국 독립을 위하여 목숨을 바칠 것, 절대 비밀 엄수, 맡은 바 책무 완수 등을 정하였다. 흑백당은 제일 먼저 처단 대상인 친일반민족자 명부를 작성하고 1차 대상으로 이광수(李光洙)·조병상(曺秉相)·이승우(李昇雨)·최린(崔麟) 등을 선정하였다. 또한 일본인이 밀집해 살고 있던 욱정(旭町, 현 남산동) 일대에 방화 계획을 세우고 일제의 패망과 조국의 독립이 가까웠음을 알리는 전단을 각처에 배포하여 민족의 각성을 촉구하고자 하였다. 이외에도 청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학병 반대를 선전하고 어쩔 수 없이 입대하게 되면 탈출하여 한국광복군(韓國光復軍) 등에 참가하도록 촉구하는 활동도 전개하였다. 또한 실제 거사에 필요한 무기를 구입하고 행동을 주동할 수 있는 특공대(特攻隊)를 조직하였는데, 이때 홍건표 등과 함께 특공대로 뽑혔다. 이후 다른 대원들과 함께 경복중학교 무기고를 습격하여 교련용 38식 소총 2자루와 실탄, 총검 등을 비밀리에 빼내었다. 한편 명의택 등은 방화에 사용할 휘발유를 입수하는 등 거사를 위해 준비를 하였다. 이와 같이 거사를 준비하던 중 1943년 10월 흑백당의 동조자였던 보성전문학교의 김창흠(金昌欽)이 귀향열차 안에서 일제를 욕하다가 충북 괴산경찰서(槐山警察署)에 붙잡혔다. 김창흠의 집을 가택수색하는 과정에서 흑백당 관련 문서가 발각되고 제일 먼저 김창흠을 동지로 규합했던 홍건표가 일제 경찰에 붙잡힘으로써 흑백당은 체포 대상에 오르게 되었다. 이에 흑백당원들이 긴급회의를 소집하여 국내의 활동이 더 이상 어려워졌으므로 중국으로 건너가 광복군에 투신하기로 결정하였다. 당원들은 당원 김성근(金盛槿)의 매형이 있던 만주의 펑톈성(奉天省) 신민시엔(新民縣)에서 우선 집결하기로 하고, 1943년 12월 초부터 한두 명씩 조를 짜서 각기 만주로 떠났다. 이때 주낙원과 한 조가 되어 만주로 갔다. 신민시엔에 집결한 당원들은 다시 2인 1조를 구성하여 이듬해 2월 10일까지 일단 베이징(北京)에 모여 임시정부가 있던 충칭(重慶)으로 가기로 하였다. 이때도 주낙원과 함께 청더(承德)를 경유하여 베이징으로 갔다. 먼저 베이징에 도착해 동지들을 기다리고 있던 중, 이러한 사실을 탐지한 일제 경찰에게 붙잡혔다. 1944년 1월 말부터 2월 중순 사이에 베이징·선양(審陽)·신민·청더 등지에서 모든 당원들이 붙잡혀서 국내로 이송되었으며, 국내에 머물렀던 남상갑 등도 동시에 붙잡히고 말았다. 경기도경찰부 고등계에서 모진 조사를 당한 후 같은 해 4월 대전지방법원 검사국으로 송국되었다. 1944년 12월 6일 대전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8년을 받았다. 대전형무소에서 옥고를 겪다가 1945년 8월 광복 직후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변은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