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洪彬
洪彬1923. 6. 23 ~ 1975. 5. 22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구사범학교 다혁당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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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1) 1923년 6월 23일 전라남도 강진군(康津郡) 병영면(兵營面) 삼인리(三仁里)에서 태어났다. 일제의 강요로 인한 창씨명으로 인천홍빈(仁川洪彬)이 있다. 대구사범학교 재학 중이던 1941년 2월 15일 동교생 김효식(金孝植)·배학보(裵鶴甫)·문홍의(文洪義) 등 15명과 함께 대구부(大邱府) 대봉정(大鳳町, 현 대구광역시 중구 대봉동)의 유흥수(柳興洙) 하숙집에 모여 항일 비밀결사 다혁당(茶革黨)을 조직하였다. 1940년 11월 결성된 대구사범학교 문예부와 1941년 1월 23일 결성된 연구회의 정신을 계승하였다. 각 분야에 걸쳐 실력을 양성하고 조국의 독립을 촉진하기 위해 투쟁할 것을 목표로 다혁당을 결성하였다. 다혁당에서 연구부 책임을 맡으며, 1941년 3월부터 5월까지 여러 차례 비밀회합을 통해 당원의 비밀엄수 및 절대복종·주 2회 회합과 하급생 지도 등을 당 규약으로 정하는 동시에 당시의 운동 상황에 대해 분석하고 전망하였다. 다혁당 구성원으로서 민족차별 교육에 반대하여 대구사범학교 연습과 학생(주로 일본인)과 심상과 학생(대부분 한국인)에 대한 차별 대우를 철폐시키는 방안도 토의하였다. 1941년 7월 대구사범학교 8기생으로 충남 홍성(洪城)에서 교사로 근무하던 정현(鄭鉉)이 갖고 있던 『반딧불』이 일제 관헌에게 입수되면서 대구사범학교 비밀 결사의 전모가 드러나게 되었다. 이로 인해 대구사범학교 관련자 300여 명과 함께 일제 경찰에 붙잡혀 2년여 동안 미결수로 고초를 겪었다. 1943년 11월 30일 대전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상고하였으나, 1944년 3월 23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옥고를 겪던 중 1945년 8월 광복으로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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