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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朱男

朱男

1890. 12. 11 ~ 1958. 8.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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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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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안성(安城)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안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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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안성군 이죽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90년 12월 11일 경기도 안성군(安城郡) 이죽면(二竹面, 현 안성시 죽산면) 용설리(龍舌里)에서 태어났다.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19년 4월 2일 안성군 이죽면 만세시위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안성군의 이죽면·원곡면(元谷面)·양성면(陽城面)은 각각 죽산군(竹山郡)과 양성군(陽城郡)으로 나뉘어져 있다가, 1914년 일제의 지방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안성군으로 통합되었다. 안성군 이죽면에서는 면사무소·죽산경찰관주재소 등과 죽산장터가 위치한 죽산리(竹山里)를 중심으로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특히 1919년 4월 1일부터 3일까지 집중적으로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이 만세시위는 이미 3월 하순부터 만세운동이 시작된 인근의 원곡면과 양성면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일어난 것이었다. 4월 1일 이죽면에서는 죽산보통학교 학생들과 두현리(斗峴里) 주민들을 중심으로 두 차례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죽산보통학교의 학생 양재옥(梁在玉)과 안재헌(安在憲)은 학생들에게 나라의 독립을 위해 만세시위에 나설 것을 촉구하면서 ‘독립만세’를 선창하고, 이에 공감하여 동참한 50여 명을 이끌고 교정에서 ‘독립만세’를 외쳤다. 같은 날 두현리의 이기훈(李起薰)과 이응식(李應植) 등은 일제의 부역 동원으로 도로보수 작업을 하고 있던 주민들에게 만세시위에 참여할 것을 호소한 후, 수백 명을 이끌고 주재소와 면사무소 앞에서 만세시위를 거행하였다. 이러한 만세시위는 죽산장터의 장날인 다음 날로 이어졌다. 4월 2일 이죽면의 각 지역에서 2,000여 명의 주민들이 죽산장터로 집결하였다. 이때 매산리(梅山里)의 조문삼(曺文三)·김기은(金起銀), 장능리(長陵里)의 이원선(李元先) 등과 매산리·용설리·장능리 주민들을 규합하고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같은 날 밤 마을 사람들에게 만세시위에 동참할 것을 권유한 후, 참여자들을 이끌고 죽산리로 이동하였다. 그리고 조문삼·김기은·이원선 등이 인솔한 매산리·장능리 주민들과 합류해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어서 시위대를 이끌고 주재소·우편소·면사무소·죽산보통학교 등으로 행진하며 큰 목소리로 ‘독립만세’를 외치는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그러자 죽산으로 파견된 일제 군경이 시위대를 가로막고 즉시 해산을 명령하였지만, 이를 거부하고 만세시위를 계속하였다. 일제 군경이 시위대를 향해 무차별적으로 총격을 가해 3명이 현장에서 사망하고, 8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 과정에서 붙잡혀 조사를 받고, 조문삼·김기은·이원선과 더불어 재판에 넘겨졌다. 1919년 6월 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과 소요죄로 징역 10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7월 31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68년 대통령표창)으로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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