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智性
智性1893. 6. 21 ~ 1962. 4. 23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5)
관련 사건
- · 1919년 홍성군 금마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5) 1893년 6월 21일 충청남도 홍성군(洪城郡) 금마면(金馬面) 부평리(富平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홍성군 금마면에서 거행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홍성군 금마면 만세시위는 부평리의 서당 훈장인 민영갑(閔泳甲) 등의 주도로 시작되었다. 당시 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확대되고 있음을 파악한 민영갑은 이재만(李載萬)·김재홍(金在洪)·최중삼(崔仲三)·조재학(趙載學)·조한원(趙漢元) 등과 논의하였다. 그리고 가산리(佳山里) 이원교(李元交)의 집에 설치된 임시 연극공연장에서 4월 1로 예정된 연극 공연에 많은 주민들이 모일 것으로 예상하고, 이 자리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4월 1일 가산리의 연극공연장에서 예정대로 연극 공연이 시작되었다. 민영갑·이재만·김재홍·최중삼·조재학·조한원 등은 관객으로 참석해 이를 관람하다가 오후 8시경 ‘조선독립만세’를 선창하면서, 공연에 참석한 주민들에게 거사에 참여할 것을 역설하였다. 이에 공감한 주민 수십 명이 동참하자, 이들과 함께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연극 공연장은 만세시위로 흥분된 분위기였으나, 곧이어 출동한 일제 경찰에 의해 강제로 해산되었다. 4월 4일에는 홍성군 금마면과 그 주변 3개 면의 20여 개소에서 봉화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홍성경찰서 관할 일제 경찰들이 만세시위 참여자들에게 총격을 가해, 10여 명이 사망하고 주도 인물 5명도 붙잡혔다. 현재 전하는 자료의 한계로 참여한 금마면 만세시위를 특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금마면 만세시위에 적극 참여했다는 이유로 일제 경찰에 붙잡혀 홍성경찰서로 연행되었고, 조사 이후 즉결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4월 23일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아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