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직
權五稷1927. 7. 28 ~ 1981. 11. 20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안동농림학교 대한독립회복연구단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6)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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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6) 1927년 7월 28일 경상북도 안동군(安東郡) 길안면(吉安面) 송사리(松仕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안동이다. 서후공립소학교(西後公立小學校)를 졸업하고 1941년 대구의 대륜중학교(大倫中學校)에 입학하였으나, 1943년 대구동촌비행장 강제 근로 동원에 장기간 불참하였다는 이유로 퇴학당하였다. 그 후 안동의 안동농림학교(安東農林學校)에 편입하였다. 1943년부터 안동농림학교 학생들 간에는 자연스럽게 항일 독립운동에 나서자는 공감대가 형성되어갔다. 그 결과 1944년 10월 5학년(8회) 권영동(權寧東)·윤동일(尹東一), 4학년(9회) 황병기(黃炳基), 3학년(10회) 서정인(徐正寅) 등을 중심으로 조선독립회복연구단(朝鮮獨立回復硏究團)이 조직되었다. 이들은 참모부·교화부(敎化部)·연락부·신풍부(神風部)·특공부(特攻部) 등의 조직을 두었다. 동단은 조직 구성에서 보듯이 전투적인 항일 투쟁을 계획하고 있었다. 교련 수업용 무기를 탈취하여 안동경찰서와 헌병파견대를 습격, 점령한 후 주민들을 궐기시키고 의성(義城)까지 진출하여 대구의 일본군 부대와 교전할 것을 계획하였다. 이후 동단은 안동농림학교 학생뿐 아니라 일반인과 경주중학교(慶州中學校) 학생들까지 조직을 확대하여 단원이 60여 명에 달하였다. 서정인의 권유로 동단에 가입하여 항일 투쟁에 나섰다. 방학을 이용하여 지방의 실정을 조사하고 당시 존경받던 석주(石洲) 이상룡(李相龍)의 손자인 이대용(李大用)에게 지원을 요청하는 등 학생을 넘어선 일반인 조직 확대에 힘썼다. 동단은 일본군 육군기념일로 경비가 허술한 1945년 3월 10일을 거사 일로 정하고 무장봉기 계획을 추진하였다. 이때 특공부로 경찰서 등 일제 주요 시설을 점령하는 임무를 맡았다. 그러나 2월 초부터 각지의 단원들이 체포되면서 조직이 노출되어 3월에는 단원들이 모두 체포되고 말았다. 3월 7일 집에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가혹한 고문을 당하였다. 고문으로 인해 거의 실신 상태에서 가출옥하였으나, 2개월간 치료를 받고 다시 수감되어 재판을 기다리다가 광복을 맞아 기소유예로 출옥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정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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