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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鎭奭

鎭奭

1896. 8. 21 ~ 1970. 7.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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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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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김해(金海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김해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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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1919년 김해군 명지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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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96년 8월 21일 경상남도 김해군(金海郡) 명지면(鳴旨面)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이규환(李圭環)이다. 1919년 명지면의 사립 동명학교(東鳴學校) 교사로 재직하고 있었고, 4월 10~11일 명지면 중리(中里) 명호시장(鳴湖市場)에서 거행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1919년 서울 등에서 전개된 만세운동 소식이 김해군에도 전해지면서 3월 중순부터 몇 차례의 거사 계획이 있었으나 무산되었다. 그러다가 3월 30일 김해 읍내에서 만세시위가 전개된 후, 군내 각 마을에서 11차례나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경성약학전문학교를 다니던 동창 김연복(金淵輻)으로부터 독립선언서를 입수한 후 거사를 계획하고, 다른 동창생인 김영두(金榮斗)·양왕석(梁旺錫)·이규회(李圭恢)·지봉구(池鳳九) 등과 함께 만세시위를 준비하였다. 그리고 거사일은 중리에 위치한 명호시장의 장날인 4월 10일로 정하였다. 거사 전날인 4월 9일 밤에는 양왕석과 함께 밤을 세워가며 만세시위에 사용할 독립선언 전단과 태극기를 제작하였다. 또한 제자들인 동명학교 학생들에게도 만세시위에 참석하도록 비밀리에 연락하였다. 4월 10일 양왕석 등 주도자들을 포함한 동명학교 학생들과 함께 중리 명호시장으로 갔다. 장날 가장 사람들이 붐비는 오후 2시경 손수 제작한 큰 태극기를 장대에 높이 달고 독립만세를 선창하였다. 주민들이 몰려들어 호응하자 태극기와 독립선언 전단을 학생들과 함께 나눠주면서 시장 곳곳을 행진하였다. 만세시위가 일어났다는 보고를 받은 일제 헌병들이 출동해 시위대를 향해 총검을 휘두르며 폭압적으로 진압을 전개하자, 다른 주도자들과 함께 다음날 다시 만세시위를 거행하기로 하고 일단 해산하였다. 이튿날인 4월 11일 양왕석·이규회·박두성(朴斗成)·정소목(鄭小穆) 등과 함께 명지면 진목리(眞木里)로 이동해 오후 10시 경부터 다시 만세시위를 시작하였고, 동명학교 학생들과 주민들이 동참하였다. 그러나 연락을 받고 다시 출동한 일제 헌병대가 무자비하게 시위대를 탄압하면서 강제 해산을 시도하였다. 시위대와 함께 선두에서 격렬하게 저항하였지만, 무장한 일제 헌병들을 상대로 만세시위를 지속할 수 없어 결국 해산하였다. 시위대가 흩어지자 일제 헌병대는 대대적인 검속을 단행하며 만세시위 주도자들을 검거하였다. 결국 양왕석·이규회·박두성·정소목·김영두·지봉구와 함께 붙잡혀 혹독한 심문을 거친 후 재판에 넘겨졌다. 재판정에서 모든 일은 자신이 단독으로 한 것임으로 본인에게만 형벌을 줄 것이며, 다른 사람들은 전부 석방하라고 소리 높이 외치며 기개를 과시하기도 하였다. 이 일로 1919년 8월 5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아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배석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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