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鎭奭
鎭奭1893. 12. 8 ~ 1953. 2. 15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5)
관련 사건
- · 1919년 홍성군 금마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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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05) 1893년 12월 8일 충청남도 홍성군(洪城郡) 금마면(金馬面) 송강리(松江里)에서 태어났다.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였다. 금마면의 독립 만세운동은 부평리(富平里)의 서당 훈장 민영갑(閔泳甲)으로부터 시작되었다. 1919년 3월 1일 이래 서울에서 시작된 독립 만세운동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평소 친분이 깊었던 이재만(李載萬)을 비롯하여 김재홍(金在洪)·최중삼(崔仲三)·조재학(趙載學)·조한원(趙漢元) 등과 논의하여 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이재만 등은 4월 1일 가산리(佳山里) 이원교(李元交)의 집에 설치된 임시 연극 공연장에서 주민들을 대상으로 연극 공연이 열리는 것을 이용하여 만세운동을 벌이기로 하였다. 연극 공연장에 관객으로 입장하여 만세운동의 기회를 엿보던 민영갑 등은 한창 연극이 공연 중이던 오후 8시경 일제히 객석에서 일어나 ‘조선 독립 만세’를 선창하고 만세운동의 취지를 설명하면서 주변의 주민들에게 동참할 것을 호소하였다. 이에 공감한 30여 명의 주민들이 호응하여 ‘조선독립만세’를 따라 외쳤다. 그러나 출동한 일제 경찰에 곧바로 해산되었다. 4월 4일에는 금마면과 그 주변 3개 면의 20여 개소에서 봉화시위가 일어났다. 홍성경찰서 일제 경찰들이 총기를 발포하여 만세시위 참가자 10여 명이 사망하고 주도인사 5명을 체포하였다. 현재 전하는 자료의 한계로 참여한 금마면 만세시위를 특정할 수 없으나, 4월 초 금마면에서 만세시위가 집중적으로 일어나자, 일제 경찰의 대대적인 검거작전이 전개되었다. 이때 일제 경찰에 붙잡혀 홍성경찰서에 구금되었다. 1919년 4월 23일 홍성경찰서의 즉결심판에서 만세 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점이 인정되어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아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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