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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學述

學述

1892. 9. 10 ~ 1955. 3.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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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學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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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의성(義城)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의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5)

관련 사건

  • · 의성 신평면(3.25)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5) 1892년 9월 10일 경상북도 의성군(義城郡) 신평면(新平面) 덕봉동(德峯洞)에서 태어났다. 1919년 만세운동 당시 나이는 28세로, 농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북장로파 기독교인으로 평소 국내외의 정세에 밝았는데, 1919년 만세운동 당시 서울을 비롯한 각 지역에서 만세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소식을 여러 경로를 통하여 접하게 되었다. 같은 기독교인인 김수성(金守星)·손문원(孫文遠) 등과 함께 이에 호응하여 신평면에서도 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계획하였다. 1919년 3월 25일 김수성과 서로 의논한 후 김목이(金睦伊)에게 부탁하여 뜻을 함께 할 것을 권유하였다. 김목이가 이에 동의하자 태극기를 제작해 줄 것을 부탁하였고, 또 손문원에게도 제안하여 시위에 합류하도록 하였다. 이학술·김수성·손문원은 또한 김차쇠(金且釗)·김선근(金善根)·유홍식(柳洪植)·유성이(柳聖伊)에게도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할 것을 권유하였고, 덕봉동과 중률동(中栗洞) 등지에서 만세시위의 취지에 찬성하는 사람들을 규합하였다. 3월 25일 오후 9시 경 김수성·손문원과 함께 앞장서서 덕봉동 마을 앞 산에 올라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독립만세’를 소리높여 외쳤다. 이들이 규합한 시위대 인원은 일제 경찰 추산으로 약 20여 명이지만 실제로는 약 50여 명에 달하였다. 이들은 태극기를 휘날리며 ‘독립만세’를 연호하고 독립에 찬동하는 연설을 하였으며, 덕봉동에서 중률동까지 ‘만세’를 부르며 행진을 하였다. 시위대는 중률동에 있는 면사무소까지 행진한 이후 신평주재소를 공격하고자 했다. 그러나 정보를 입수한 경찰들이 출동하여 시위대는 해산되었고 김수성·손문원 등 주도 인물과 함께 현장에서 붙잡혔다. 1919년 4월 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아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홍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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