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순
李賢淳1879. 5. 17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10)
관련 사건
- · 4월 9일 원주시 흥업면(興業面)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0) 1879년 5월 17일 강원도 원주군(原州郡) 흥업면(興業面) 흥업리(興業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9일 흥업면에서 일어난 만세시위를 계획하고 이끌었다. 원주에서는 3월 27일 노림리(魯林里)를 시작으로 만세시위가 연이어 일어나고 있었다. 4월 9일 낮에도 흥업면 사제리(沙堤里)·대안리(大安里)·매지리(梅芝里)에서 김상익(金商翼)·윤산악(尹山岳)·이재손(李在孫)·원성규(元成圭) 등이 주도하여 마을 주민들과 만세운동을 펼쳤다. 시위대가 면사무소가 있는 흥업리로 향할 때 기마 헌병이 제지하자 군중은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해산되었다. 이때 일어난 사제리·대안리·매지리 만세운동에 큰 자극을 받았다. 전국 각지의 만세운동 소식을 접할 때마다 항상 독립의 희망을 품고 있었는데, 4월 9일 한낮의 만세시위가 흥업리로 향하다가 중단된 것에 분노와 안타까움을 느꼈다. 곧 흥업리에서 만세 시위 계획을 세우고, 같은 마을에 사는 홍대성(洪大成)과 의기투합하였다. 홍대성과 그날 밤 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결의하였다. 두 사람은 먼저 ‘대한독립만세’라고 쓴 대형 태극기를 만들고, 함께할 사람들을 규합하였다. 홍학성(洪學成)과 함원동(咸元東)에게는 주민들을 동원하게 하였다. 주민 40여 명이 동참하였다. 홍대성 등 주도자들과 주민들을 이끌고 뒷산으로 향하였다. 고종이 승하하였을 때 망곡례(望哭禮)를 올리던 뒷산 언덕에 올라 봉화(烽火)를 피웠다. 봉화를 올린 후 군중과 한 목소리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시위대의 만세 소리에 주민들이 합류하면서, 이에 힘입은 군중과 산에서 내려와 면사무소로 향하였다. 시위대는 대형 태극기를 앞세우고 면사무소로 나아갔다. 도착해 면사무소를 둘러싸고 “면장 나오라!”고 외쳤다. 시위대의 함성에 면장 서정우(徐廷遇)가 나오자, 주도자들과 같이 태극기를 쥐여 주며 만세운동에 동참할 것을 요구하였다. 시위대의 기세에 눌린 서장우가 ‘독립만세’를 외쳤고, 군중도 만세를 연호하였다. 이후 면장을 앞세우고 흥업면에서 만세운동을 전개한 후 자진 해산하였다. 다음날 만세운동 소식을 접한 일제 경찰이 검거 작전을 펼치면서 만세운동 주도자들 및 참여자들과 함께 붙잡혔다. 5월 8일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경성지방법원으로부터 징역 10월을 받았다. 재판 결과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지만, 6월 20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다시 한번 상고하면서 상고 취의문에 “조선 민족으로서 정의와 인도(人道)에 근거한 것으로 범죄가 아니며, 유죄 판결은 부당하며, 받아들일 수 없는 위법”이라고 항변하였다. 그러나 그 해 8월 30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이후 서대문감옥에 투옥되었고 이듬해 4월 28일 영친왕의 결혼에 따른 특사로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정상우⋮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