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弘珪
弘珪1896. 7. 12 ~ 1975. 3. 1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3)
관련 사건
- · 신상면 유구장터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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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3) 1896년 7월 12일 충청남도 공주군(公州郡) 유구면(維鳩面) 녹천리(鹿川里)에서 태어났다. 농업에 종사하였다. 이명으로 한자를 달리한 이홍규(李洪珪)를 사용하였다.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19년 유구장터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14일의 신상면 유구장터 시위는 천도교(天道敎)의 황병주(黃秉周)로부터 시작되었다. 황병주는 서울의 만세운동 과정에서 교주 손병희(孫秉熙)가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다는 『매일신보』 기사를 읽고, 만세운동을 전개할 것을 계획하였다. 황병주는 유구장터의 장날인 3월 14일 오후 장터로 나가 한 무리의 사람들 앞에서 모자를 벗어 흔들며 ‘조선독립만세’를 선창하고, 동참할 것을 호소하였다. 황병주가 단신으로 만세운동에 나선 모습에 감동하여 다른 사람들과 함께 시위대에 합류하여 장터의 곳곳을 행진하며 ‘조선독립만세’를 연창하였다. 만세시위가 발생하자, 일제 경찰들이 출동하여 해산을 명령하고 중심 인물인 황병주를 연행하였다. 이에 주재소로 가서 황병주를 구출하자는 이승현(李升鉉, 聖鉉)의 주장에 황연성(黃璉性)·박준빈(朴準斌)·노상우(盧相羽)·유석우(柳錫瑀) 등과 함께 적극적으로 동조하여 100여 명의 시위대와 함께 주재소로 달려가서 황병주의 연행에 항의하며, 석방을 강력하게 요구하였다. 하지만 주재소의 순사들은 황병주의 석방을 거부하고, 시위대에게 고압적인 자세를 취했다. 순사들의 태도에 분노한 박준빈과 현우석(玄宇錫)이 순사들을 구타하고, 기물을 파기하기 시작하였다. 이것을 보고 적극 호응하여 안만원(安萬元)·유진태(兪鎭台)·이정춘(李正春)·김상규(金相圭)·강태하(姜泰河)·윤창선(尹昌善)·조병옥(曺秉玉)·김좌록[金左錄, 재록(在錄)] 등과 함께 주재소 창문에 돌을 던져 깨뜨리는 등 주재소의 시설을 파괴하면서 격렬한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에 대해 공주경찰서는 지원 병력으로 순사와 헌병 10여 명을 유구주재소로 급파하여 시위대를 해산시키고, 주도 인물을 20여 명을 체포하였다. 이때 황연성·박준빈·이승현 등과 함께 붙잡혔다. 공주경찰서의 조사 과정에서 만세시위의 선두에서 적극적으로 참여한 사실이 인정되어 법원으로 송치되었다. 1919년 6월 16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 및 소요죄로 징역 6월, 벌금 30원을 받았다. 항소하였으나, 7월 28일 경성복심법원에서도 동일한 판결이 나왔다. 이후 상고를 포기하여 징역 6월, 벌금 30원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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