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林光鎬

光鎬

1888. 9. 26 ~ 1951. 3.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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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林光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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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청양(靑陽)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청양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6)

관련 사건

  • · 1919년 청양군 화성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6) 1888년 9월 26일 충청남도 청양군(靑陽郡) 화성면(化城面) 화암리(花岩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그해 4월 5~6일 청양군 화성면 산정리(山亭里)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전국적으로 독립을 위한 만세운동이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한 박공삼(朴公三)과 조남희(趙南熙)는 이에 크게 공감하여 화성면에서도 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의하고, 주변에서 동참할 인물을 찾는데 노력하였다. 이들로부터 “조선은 이미 독립되었으니, 독립만세를 부르자”라는 호소를 받고, 이에 공감하여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박공삼·조남희 등과 함께 면소재지인 산정리를 중심으로 1919년 4월 5일부터 6일까지 이틀간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4월 5일 조경희(趙景熙)·김정봉(金正鳳)·김종문(金鍾文)·박태선(朴泰善) 등 산정리의 주민 20여 명과 함께 만세시위를 시작하였다. 정자동(亭子洞)에 태극기 2기를 세워놓고 큰 종과 쇠북을 울리며 ‘독립만세’를 외치는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4월 6일에도 박공삼, 조남희의 지휘에 따라 전날 시위에 참여한 산정리 주민들과 함께 오전 10시경 증축 공사를 하고 있었던 화성면사무소로 행진하였다. 박공삼은 공사 현장으로 가서 작업 중인 인부들에게 “조선은 이미 독립하였기 때문에 증축 공사는 필요치 않다”고 강력하게 주장하여 중축 공사를 중단시켰다. 그리고 목수 3명과 약 20명의 인부들을 공사 현장에서 물러나게 하였다. 이후 박공삼은 시위대를 향해 면사무소에 대한 공격을 지휘하였다. 이에 따라 ‘독립만세’를 연창하면서, 돌을 던지는 등 이미 공사가 끝난 면사무소의 시설을 파괴하는데 참여하여 격렬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날의 만세시위에 참여한 혐의로 일제 헌병에 붙잡혀 청양헌병분견소(靑陽憲兵分遣所)로 연행되어 조사받았다. 만세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점이 인정되어 즉결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4월 10일 즉결심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을 이유로 태(笞) 90도(度)를 받아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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