林道成
道成1878. 12. 26 ~ 1953. 1. 9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1919년 신천군 문화면‧초리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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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78년 12월 26일 황해도 신천군(信川郡) 문화면(文化面) 동각리(東閣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판결문에 따르면 당시 한의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3월 11일 신천군 문화면 장터 만세시위와 3월 15일 초리면 장터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3월 11일 문화면의 만세시위는 개신교회 조사(助事) 최현식(崔賢植), 포목상 강성모(康成模), 잡화상 강영탁(康榮鐸) 등과 함께 계획한 것이다. 개신교인이 중심이 된 300여 명의 시위대를 이끌고 문화면의 헌병주재소로 향하였다. 시위대와 함께 주재소 앞에서 전날인 3월 10일에 일어난 만세시위로 연행된 인사들의 석방을 요구하면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일제 헌병이 전날 연행한 인사들을 풀어주자 시위대는 해산하였다. 그러자 일제 헌병은 추가 병력의 지원 속에 문화면 시위에 참여한 인사 29명을 체포하였다. 3월 15일 초리면 달천시장(達泉市場)에서 전개된 만세시위를 재차 주도하였다. 월산리의 우희제(禹禧濟)·우응봉(禹應鳳), 개신교회 조사(助事) 황치헌(黃致憲)과 함께 달천시장 장날이 열리는 3월 15일에 만세시위를 열기로 결의하였다. 유근혁(柳根赫)은 우응봉과 함께 시위에 사용할 태극기를 제작하였다. 황치헌은 우철희(禹哲禧)의 집에서 조선독립만세가 적힌 깃발을 제작하였고, 시위 전날 홍진범(洪鎭範)에게 사람을 보내서 조선독립선언서와 국민회보(國民會報)를 각각 200장 인쇄하도록 하였다. 3월 15일 우희제·우응봉·황치헌과 함께 달천시장에서 만세시위를 이끌었다. 우응봉은 정도원(鄭道源)에게 태극기 10장을 주면서 군중에게 배포하도록 하였다. 우희제·우응봉·황치헌 등과 함께 군중에게 조선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배포한 후, 300여 명의 시위대를 이끌고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일제 헌병은 시위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9명을 연행하였다. 일제 군경에 의해서 문화면 장터 시위, 초리면 장터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6월 12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이에 “일본의 간계에 의해서 한국이 식민지가 되었으며, 만국강화회의에서 약소 민족의 독립을 허용하였기에 조국의 독립을 이루기 위해서 독립만세를 외친 행위는 죄가 될 수 없다”면서 상고하였다. 하지만 7월 26일 고등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되어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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