林乭伊
乭伊1890. 9. 29 ~ 1936. 8. 15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1919년 안동군 임하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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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90년 9월 29일 경상북도 안동군(安東郡) 임하면(臨河面) 고곡동(古谷洞)에서 태어났다. 이후 본적지인 금소동(琴韶洞)으로 이주하였다. 본관은 예천(醴泉)이며, 이명은 임석이(林石伊)이다. 1919년 3월 21일에 금소동과 이웃 마을 신덕동(新德洞)에서 일어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임찬일(林贊逸)·노말수(盧末守)에게 만세운동 제의를 받고 동참하게 되었고, 박유석(朴有石)·임동숙(林東淑)·유북실(柳北實)·임춘섭(林春燮)·임석현(林錫鉉) 등이 뜻을 모아 비밀리에 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논의를 거듭한 끝에 3월 16일 길안면(吉安面) 장날에서 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의하였다. 그러나 막상 당일에 사람들의 참여가 예상 밖으로 저조하자 거사일을 3월 21일로 미루고 장소도 금소동으로 바꾸었다. 3월 21일 거사 당일 약속 장소로 향하였고, 마을 앞에는 주도자들과 만세운동에 참여하기 위하여 곳곳에서 주민들이 모이기 시작하였다. 오후 6시경 주도자들과 주민 100여 명이 만세시위를 시작하였다. 주도자들과 함께 소리 높여 ‘대한독립만세’를 외쳤고, 주민들도 호응하여 ‘독립만세’를 연호하였다. 이어서 주도자들과 함께 계획한 대로 주민들을 이끌고 면사무소와 경찰관주재소가 있는 신덕동으로 향하였다. 시위대와 함께 행진하면서 인근 마을의 주민들이 합세하였고, 어느덧 시위대는 300여 명에 이르렀다. 밤 9시경 경찰관주재소에 도착하여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당시 주재소의 순사와 순사보가 시위대를 해산시키려 시위대를 향하여 총탄을 발포하였다. 사상자가 발생하면서 시위대와 함께 잠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밤 11시경 대열을 정비하여 시위대를 이끌고 다시 주재소로 갔다. 시위대는 일제 경찰의 무자비한 탄압에 분노하며 주재소에 돌을 던지며 항거하였고, 다수의 군중과 함께 사무소로 들어가 벽을 넘어뜨리고 공문서를 파기하였다. 뒤이어 면사무소로 달려가 건물의 문과 창문, 가스등에 돌을 투척하여 부수고 안에 들어가 기물과 공문을 파괴하였다. 격렬한 투석전으로 주재소와 면사무소는 거의 지붕과 벽만 남은 폐허가 되었다. 이후 시위대와 함께 자진 해산하였다. 다음날부터 일제 경찰은 주도자와 참여자 검거 작전을 폈고, 이 과정에서 압송되었다. 5월 29일 대구지방법원으로 이감되었으며 7월 4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 소요죄로 징역 1년 6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정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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