林東淑
東淑1884. 2. 13 ~ 1956. 3. 5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1919년 안동군 임하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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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84년 2월 13일 경상북도 안동군(安東郡) 임하면(臨河面) 금소동(琴韶洞)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울진(蔚珍)이다. 1919년 3월 21일 금소동과 신덕동(新德洞)에서 일어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같은 마을에 사는 박유석(朴有石)·손돌이(孫乭伊)·임춘섭(林春燮)·노말수(盧末守), 고곡동의 임찬일(林贊逸) 등과 함께 만세운동을 계획하고 시위를 이끌었다. 주도자들과 함께 만세운동을 실행에 옮기기 위하여 여러 차례 만남을 가져 3월 16일 길안면(吉安面) 장날을 거사일로 정하였다. 그러나 거사 당일 예상한 것과 달리 참여한 인원이 적자 거사 날짜를 3월 21일로 연기하고 금소동에서 모이기로 한 후 해산하였다. 3월 21일 약속 장소로 향하였고, 여기에는 주도자들과 마을 주민 등 100여 명이 모여 있었다. 오후 6시경 주도자들과 먼저 ‘독립만세’를 선창하였고, 이어서 군중이 ‘독립만세’를 연호하였다. 주도자들을 이끌고 금소동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한 이후에 계획한 대로 면사무소와 경찰관주재소가 있는 신덕동으로 향하였다. ‘독립만세’를 외치며 행진하는 시위대에 인근 마을 주민들이 합류하면서 시위대가 신덕동 경찰관주재소 앞에 이르렀을 때는 300여 명이 함께 하였다. 시위대와 함께 주재소를 포위하고 ‘독립만세’를 불렀다. 이때 주재소의 순사와 순사보들은 시위대를 강제로 해산시키려 총탄을 발포하였다. 이 과정에서 사상자가 발생하며 시위가 잠시 중단되었다. 이날 오후 9시경 잠시 물러났던 시위대를 재정비하여 일제 경찰에 항의하기 위해 다시 주재소로 몰려갔다. 이때는 만세를 외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돌을 던져 주재소 출입문과 창문, 벽, 가스등 등을 부수었다. 주도자들과 함께 시위대를 이끌고 주재소 안으로 들어가 문서를 파기하고 벽을 무너뜨려 주재소 건물을 파괴하였다.이어서 면사무소로 향하였고, 시위대와 함께 돌과 몽둥이로 면사무소 건물을 무너뜨리고 사무소 안으로 들어가 집기를 부수고 문서를 모두 파기하였다. 격렬한 만세시위로 주재소와 면사무소는 지붕과 기둥만을 남기고 폐허가 되었고, 시위대는 자진 해산하였다. 이러한 활동으로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19년 7월 4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과 소요죄로 징역 1년 6월을 받아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정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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