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林斗曄

斗曄

1901. 6. 13 ~ 1970. 4. 29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林斗曄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경기 강화(江華)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강화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1920년 강화군 양사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901년 6월 13일 경기도 강화군(江華郡) 양사면(兩寺面) 철산리(鐵山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한자를 달리 한 임두엽(林斗葉·林斗業)이다. 양사면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1920년 8월 28일 평소 같은 동리에서 생활하며 친분이 깊었던 같은 동리의 오용진(吳用辰), 면사무소의 사환 황준실(黃俊實) 등과 함께 식민지 조선의 현실에 대해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였다. 1년 전의 대대적인 만세운동 이후에도 여전히 식민지 상태인 나라의 현실에 대해 울분을 토로하던 중, 오용진이 “독립만세를 높이 부르도록 하자”고 제안하자 이에 적극적으로 찬성하여 양사면에서 지난해의 만세시위를 계승하여 새로운 만세운동을 일으킬 것을 결의하였다. 이날 같은 마을에 위치한 임순학(林淳鶴)의 집에 다시 모여 오용진·황준실과 논의한 후, 양사면의 주민들을 규합해서 만세시위를 전개할 목적으로 1장의 대형 괘지에 태극기를 제작하였다. 오용진은 대형 태극기의 여백에 ‘조선독립만세! 슬프도다, 슬프도다!’라는 문구를 기입하고, “이것은 독립에 대한 발언이다. 이 글을 본 사람은 노소를 불문하고 9월 2일에 만세를 부르라. 이 말에 불응하는 사람은 새나 짐승에 가까운 자이다”라는 내용의 「독립만세 광고」라는 문서를 작성하였다. 그리고 이날 밤 오용진과 함께 대형 태극기와 「독립만세 광고」를 여러 사람들의 눈에 띄기 쉬운 양사면 철산리의 삼거리와 중앙광장 게시판에 부착하여 양사면의 주민들에게 만세시위 계획을 홍보하였다. 그러나 「독립만세 광고」는 만세시위가 실행되기 전인 8월 31일 철산경찰주재소의 일제경찰들에게 발견되어 곧바로 떼어졌다. 그 후 일제 경찰의 작성자에 대한 수사 과정에서 태극기와 「독립만세 광고」 작성, 부착 및 만세시위 계획을 위한 활동 내용이 발각되어 오용진·황준실 등과 함께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었다. 이로 인하여 새롭게 준비되었던 양사면의 만세시위도 실행되지 못하고 좌절되었다. 이로 인해 1920년 10월 30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판결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그해 11월 2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