林秉翼
秉翼1895. 5. 5 ~ 1919. 4. 9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관련 사건
- · 1919년 양양군 현북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1) 1895년 5월 5일 강원도 양양군(襄陽郡) 현북면(縣北面) 중광정리(中光丁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9일 현북면 기사문리(其士門里)에서 전개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가 일제 경찰의 총격에 희생되었다. 기사문리의 만세시위는 현북면의 유학자들과 기독교인, 그리고 마을 구장(區長)들이 힘을 모아 거행되었다. 일명 ‘기사문운동’으로도 불린다. 원일전리(元日田里)의 유학자 박원병(朴元秉)·박규병(朴奎秉)·박용규(朴容圭) 형제가 상광정리의 감리교회 청년 오세옥(吳世玉)·이응렬(李應烈)과 의기투합하면서 시작되었다. 이때 만세시위를 계획하던 박원병·오세옥 등으로부터 참여할 것을 권유받고, 오정현(吳鼎鉉)과 함께 동참하게 되었다. 이 거사 계획에 현북면 마을 구장들이 합세하였고, 이들과 더불어 현북면의 장이 서는 4월 9일을 거사일로 결정하였다. 하지만 박원병이 만세시위에 사용할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다니다가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그러자 박규병·박용규는 장리(獐里)에서 훈장을 하는 이성윤(李聖允)과 함께 4월 7일 임천리(林泉里)와 용천리(龍泉里)에서 만세시위를 일으킨 후 체포되었고, 이틀 후 예정되었던 만세시위도 영향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주도자들은 논의 끝에 예정대로 만세시위를 계속 추진하기로 하고, 거사에 사용할 대형 태극기와 참여자들에게 배포할 소형 태극기 등을 제작하였다. 특히 어성전리(漁城田里)의 김두칠(金斗七), 도리(陶里)의 김재한(金在漢), 원일전리의 박용기(朴容埼), 말곡리(末谷里)의 김창환(金昌煥) 등 구장들은 집집마다 한 사람씩 만세시위에 참여하도록 독려하면서 주민들에게 나누어 줄 태극기도 직접 제작하였고, 이응렬과 포수(砲手) 김종대(金鐘大)는 주도자들 간의 연락을 맡았다. 4월 9일 아침 태극기를 가지고 면사무소가 있는 하광정리로 이동하였다. 면사무소 앞에는 약 1,000명이 만세시위에 참여하기 위해 모여 있었다. 주도자들과 함께 선두에서 ‘대한독립만세’를 불렀고, 면장을 찾아 참여시키려고 하였지만 이미 면직원들과 도망친 후였다. 이에 시위대와 함께 면사무소 주변을 돌면서 만세시위를 펼친 후, 양양면으로 이동하고자 하였다. 이때 마을 원로인 김익제(金翼濟)가 양양면에 일제 병력이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리며 시위대를 만류하자, 주도자들은 거사 장소를 기사문리에 위치한 경찰주재소로 변경하였다. 이어서 시위대와 함께 고개 너머 면사무소와 약 10분 거리에 있는 주재소를 향해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이동하였고, 주재소 앞 다리에서 무장한 일제 경찰과 조우하였다. 이때 시위대의 선두에서 주도자들과 함께 있다가 순사 이홍근(李弘根)으로부터 제지를 당하였다. 그러자 주도자들과 함께 시위대를 막고 있던 일제 군경을 뿌리치고 주재소로 이동하였다. 하지만 주재소를 공격하는 시위대를 향해 일제 군경의 무차별적인 총격이 시작되었고, 결국 현장에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정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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