林秉哲
秉哲1871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10)
관련 사건
- · 1919년 봉산군 초와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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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10) 황해도 봉산군(鳳山郡) 초와면(楚臥面) 유정리(柳亭里) 출신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1919년 당시 나이가 49세이므로 1871년생으로 추정된다.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19년 4월 3일 황해도 봉산군 초와면 은파장터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1919년 3월 1일 전후 황해도 일대에 독립선언서가 배포되었다. 천도교 중앙총부 월보과장(月報課長) 이종일(李鍾一)은 이경섭(李景燮)에게 선언서 1,000여 장을 황해도 일대에 전달하도록 하였다. 이경섭은 수안군(遂安郡)·서흥군(瑞興郡)·해주군(海州郡)·곡산군(谷山郡)·봉산군 사리원에 만세운동 소식을 전하면서 선언서를 배포하였다. 이에 봉산군 일대에서는 3월 초순부터 만세운동이 지속적으로 전개되었다. 4월 3일 초와면 은파(銀波)장터에서 열린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기독교인으로 알려진 재령군 은산면(銀山面) 광탄리(廣灘里) 이승창(李承昶), 재령군 남률면(南栗面) 해창리(海昌里) 김봉서(金奉瑞) 등과 함께 장날인 4월 3일 만세시위를 거행하기로 결의하였다. 4월 2일에는 김봉서와 함께 오후 7시 30분경 은산면 당원리(堂院里)에 거주하는 임광채(林光彩)의 집에서 태극기 수십 장을 만들었다. 4월 3일 오후 1시경 이승창·김봉서를 비롯한 기독교인들과 함께 만세시위를 시작하고, 장터에 모인 사람들에게 태극기와 선언서를 나누어주었다. 하지만 거사 현장에 출동한 일제 헌병에게 만세시위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붙잡혔다. 그날 밤 시위대 200여 명이 은파헌병주재소로 몰려가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지만, 그 과정에서 다시 9명이 체포되었다. 1919년 해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해 그해 6월 18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이 취소되었지만, 다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한일병합 이후 계속해서 조선의 독립을 염원해 왔으며, 1919년 조선 독립을 위한 좋은 기회가 다가오자 남녀노소 막론하고 독립만세를 외쳤기에 본인도 만세시위에 참여했다면서 자국의 독립만세를 외친 것이 보안법 위반이 될 수 없다”면서 재차 상고하였지만, 같은 해 8월 28일 고등법원에서 최종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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