林三水洞
三水洞1900 ~ 1934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14)
관련 사건
- · 홍원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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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14) 함경남도 홍원군(洪原郡) 용운면(龍雲面) 인흥리(仁興里) 출신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1919년 당시 20세로, 1900년생으로 추정된다. 1919년 3월 홍원군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홍원군의 만세시위는 1919년 2월 28일 저녁 천도교 중앙총부의 『천도교월보(天道敎月報)』 과장이자 보성사(普成社) 사장인 이종일(李鍾一)로부터 강원도와 함경도에 독립선언서를 배포하고 만세시위를 전개하라는 지시를 받은 안상덕(安商悳)이 홍원교구의 강인택(姜仁澤)에게 독립선언서를 전달하면서 시작되었다. 강인택은 홍원교구장 강남섭(姜南燮)에게 이를 보고하였고, 홍원교구 지도자들은 주익면(州翼面) 성동리(城東里) 장날인 3월 16일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정하였다. 3월 16일 성동리 장터에는 장날을 맞아 수백 명의 군중이 모였다. 강인택과 김상봉(金相鳳)의 연설이 끝난 뒤 700여 명의 군중이 독립만세를 외치며 행진하여 홍원군청 앞에 다다랐다. 일제 경찰은 주도자들을 중심으로 60여 명을 현장에서 체포하였고 이들 가운데 20여 명은 함흥검사국으로 압송되었다. 이 과정에서 시위대 가운데 8명이 중상을 입었다. 3월 16일 주익면 만세시위와 일제 경찰의 탄압 소식을 듣고, 3월 17일 밤 유주득(劉朱得)·유학봉(劉鶴鳳)·장사월쇠(張四月釗)·최여심(崔汝深) 등과 모임을 가졌다. 논의 끝에 독립운동의 기세를 고양시키기 위해 경찰관주재소에 쳐들어가기로 결정하였다. 다음날 새벽 용운면 인흥리 용운경찰관주재소에 돌을 던져 사무실 유리창 수십 장을 깨고 들어가 칸막이 등 기물을 부수었다. 근무일지·근무표·매장인허증철·도수계(屠獸屆)·투숙계(投宿屆)·경찰관근무서 등 공장부서류(公帳簿書類)를 가지고 나와 파기하여 주재소 부근 도로에 버리고 사라졌다. 며칠 후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5월 1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이른바 훼기죄로 징역 8월을 받았다. 이에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7월 19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자 불복하여 상고하였다. 상고 취의서에서 “조선 민족으로서 정의·인도에 근거하여 의사 발동한 것으로 범죄가 아니므로 제1심 및 제2심에서 받은 유죄 판결은 부당하며 복종할 수 없는 위법한 것이므로 상고한다”라고 이유를 밝혔다. 그러나 같은 해 9월 25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4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박종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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