林尙鍾
尙鍾1886. 5. 18 ~ 1944. 4. 2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합천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86년 5월 18일 경상남도 합천군(陜川郡) 대병면(大幷面) 장단리(長耑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20일 합천군 대병면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합천 지역 만세운동은 고종 장례식을 계기로 상경한 지역 사람들이 서울 만세운동 소식과 함께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돌아오면서 본격화되었다. 장단리(長湍里)의 정태섭(鄭泰燮)·이기복(李起馥)처럼 대병면에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와서 정태섭 등과 함께 지역 유지들에게 독립선언서를 보이고 뜻을 규합하여 만세시위를 적극적으로 계획하였다. 권영두(權寧斗)·권중박(權重璞)·송헌기(宋憲基)·정시권(鄭時權)·권양희(權良熙) 등과 함께 3월 18일 비밀리에 금곡리(金谷里)의 곽씨산정(郭氏山亭)에 모여 만세시위에 대해 논의하였다. 거사일은 창리(倉里) 4일장 고현(古縣)시장 장날인 3월 20일로 결정하였다. 만세시위에 사용할 대소형 태극기 제작, 선언서 등사, 각 마을별 군중 동원을 위한 연락 분담 등의 역할 배분을 협의하였다. 이때 권중박과 함께 대평(大平) 지역을 맡았다. 거사 당일인 3월 20일 대평 지역 주민들과 함께 창리 장터로 나아갔다. 권영두가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독립 만세를 외치는 것으로 만세시위가 시작되었다. 시위대의 선두에 서서 적극적으로 군중을 이끌며 경찰주재소와 면사무소로 갔다. 주재소 내부에 진입하였을 때, 순사들이 총격을 가하자 대응하여 물리력을 행사하는 한편, 건물을 파괴하고 집기와 문서류를 끄집어내어 소각하는데 앞장섰다. 면사무소에서도 마찬가지로 집기와 건물을 파손하고 서류 등을 밖으로 갖고 나와 불태웠다. 이에 일제 군경이 폭력적 진압에 나섰다. 총검을 휘두르고 발포하여 시위대는 결국 해산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송헌기 등과 함께 시위를 주도한 주요 인물로 붙잡혔다. 경찰의 조사를 받고 기소되어 재판에 넘겨졌다.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3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배석만⋮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