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정준
任貞俊1879. 10. 21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07)
관련 사건
- · 1919년 수안군 수구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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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포장(2007) 1879년 10월 21일 황해도 수안군(遂安郡) 수구면(水口面) 석달리(石達里)에서 태어났다.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19년 3월 7일 수구면 석달리 시장에서 전개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1919년 2월 28일 천도교 중앙총부 월보과장(月報課長) 이종일(李鍾一)은 이경섭(李景燮)에게 독립선언서 약 1,000장을 전달하면서 이를 황해도 일대에 배포하도록 지시하였다. 3월 1일 이경섭은 수안군 천도교구장 안봉하(安鳳河) 등을 만나 만세시위를 제안하면서 독립선언서를 전달하였다. 이에 수안 천도교구 지도자들은 만세운동의 확산을 기획함과 동시에 3월 3일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결의하였다. 한편, 천도교 지도자들의 만세시위 준비를 사전에 감지한 일제 헌병의 사전 검속이 있었지만, 수안군 천도교 인사들은 만세시위를 강행하였다. 3월 1일 석달리에 사는 이승필(李承邲)은 수안면으로 나가서 이종일로부터 독립선언서를 전달받은 나찬홍(羅燦洪)을 만난 후, 만세시위를 펼치라는 권유와 함께 독립선언서 21장을 전달받았다. 석달리로 돌아온 이승필은 이달수(李達秀)·이재협(李在協) 등과 만나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결의하고, 석달리 홀동(笏洞)의 장날인 3월 7일을 거사일로 정하였다. 3월 7일 오후 1시경 석달리 장날 시장에서 거행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이승필·이달수·이재협 등은 태극기를 앞세우고 독립선언서를 배포하면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40여 명의 천도교도 등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석달헌병주재소를 공격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출동한 일제 헌병들에게 제지당하고 해산하였다. 이 일로 붙잡혀 해주지방법원 서흥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5월 13일 평양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재차 “만국평화회의에서 민족자결이 주창되었기에 조선인의 도리로 조선의 독립을 위해서 만세를 외쳤다”며 다시 상고하였지만, 그해 6월 12일 고등법원에서 최종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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