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林鍾祐

鍾祐

1887. 5. 3 ~ 1975. 7. 20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林鍾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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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옥구(沃溝)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북도 옥구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관련 사건

  • · 1919년 군산부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2) 1887년 5월 3일 전라북도 옥구군(沃溝郡) 개정면(開井面) 구암리(龜岩里)에서 태어났다. 목공업(木工業)에 종사하였으며, 1919년 3월 5일 개정면 구암리와 군산부(群山府)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2월 옥구 영명학교(永明學校) 교사 이두열(李斗悅)이 조선총독부에 제출하는 조선독립청원서에 날인을 요구하자, 인쇄지에 서명하였다. 개정면과 군산부 만세시위는 영명학교 교사 이두열·김수영(金洙榮)·박연세(朴淵世) 등과 개신교 학생들이 주도하였다. 원래 군산 장날인 3월 6일 만세시위를 거행하기로 하였지만, 계획이 일제 경찰에 노출되면서 3월 5일 이두열 등 주도자들이 붙잡혔다. 그러자 같은 날 오전 8시경 양기준 등이 100여 명의 시위대와 함께 구암리에서 군산부까지 이동하면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때 영명학교 학생들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고 군산부 군산경찰서 앞까지 가서 만세를 부르다가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군산경찰서에서 사흘 동안 유치되어 조사를 받고 재판에 넘겨졌다. 1919년 3월 31일 광주지방법원 군산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해 같은 해 4월 3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원판결 일부가 취소되었지만, 이른바 보안법과 출판법 위반으로 다시 징역 6월을 받았다. 재차 상고하였으나, 같은 해 6월 12일 고등법원에서 최종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석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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