林燦奎
燦奎1885. 10. 17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12)
관련 사건
- · 1919년 대동군 용악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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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12) 1885년 10월 17일 평안남도 대동군(大同郡) 용악면(龍岳面) 하리(下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같은 해 3월 대동군 용악면 하리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대동군은 평양을 둘러싼 지형이었으며, 군청 소재지 또한 평양이었기 때문에 생활권을 평양과 공유하였다. 비옥한 평야와 기독교 교회, 신학문을 교육하는 학교 등이 다른 지역에 비해 고르게 분포하고 있었다. 따라서 평양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곧이어 소식이 전해져, 대동군에도 빠르게 만세시위가 시작되었다. 특히 대동군 관내에서는 1919년 3월 2일자로 경찰서장과 군수가 서명한 ‘조선은 이미 독립되었다’라는 허위 문서가 작성되어 전파되었다. 이 문서가 면장 및 이장에게 전달되면서 민심이 동요하였다. 한편, 1919년에 개최된 파리강화회의에서 민족자결주의가 제창됨에 따라 민족의 자유가 공포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에 찬성하여 그해 3월 6일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뒤 만세시위에 동참하였다. 이 일로 일제 경찰에 붙잡힌 뒤 재판에 회부되었다. 이후 평양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1919년 5월 6일 평양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것은 한국 독립의 선언일 뿐, 일본 제국주의의 보안과는 상관없다”, “만세를 외치게 한 죄를 묻겠다면, 그 이전에 ‘민족은 자유”라고 하여 원인을 제공한 강화회의에 죄를 돌려야 한다.‘라며 재차 상고하였지만, 그해 5월 31일 고등법원에서 최종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윤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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