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창순
任昌淳1900. 6. 24 ~ 1974. 5. 8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5)
관련 사건
- · 청양군 정산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5) 1900년 6월 24일 충청남도 청양군(靑陽郡) 정산면(定山面) 백곡리(白谷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5일 청양군 정산면 정산시장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정산면 만세시위는 서울 체재 중 만세시위를 목격한 백곡리의 홍범섭(洪梵燮)의 주도로 시작되었다. 홍범섭은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귀향한 후, 평소 교류하던 유림들을 4월 5일 아침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였다. 먼저 도착한 임의재(任毅宰)·윤석희(尹錫禧)·박상종(朴商鍾)·홍세표(洪世杓)와 독립선언서를 함께 읽고 만세운동의 실행을 즉시 결정하였다. 윤기중(尹箕重)·임철재(任哲宰)·김필현(金弼鉉)·윤구학(尹龜學)·이건호(李建鎬)·이태호(李台鎬)·박춘서(朴春西)·윤봉학(尹鳳鶴)·이건직(李建直)·우달명(禹達明) 등과 함께 뒤늦게 홍범석의 집에 도착하였는데, 이때는 이미 만세운동의 실행이 결정된 후였다. 홍범섭으로부터 만세운동에 대해 논의한 내용을 듣고, 즉시 동의하여 만세시위에서 사용할 태극기를 만드는 등 긴급하게 만세시위 준비에 참여하였다. 이날 오후 홍범섭 등과 함께 서정리(西亭里)의 정산시장으로 가서 오후 3시경부터 시장에 나온 사람들에게 태극기를 나눠주고,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만세운동을 시작하였다. 이때는 소수의 인원이어서 곧바로 출동한 정산헌병분견소의 헌병들에게 밀려났지만, 재차 시장 안으로 진입하여 더욱 적극적으로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이 모습을 보고 시장에 나온 많은 주민들이 호응하여 만세시위에 동참하였고, 이들과 시장의 곳곳을 행진하며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에 일제 헌병들이 또다시 출동하여 시위대에게 즉시 해산할 것을 경고하면서 해산시키려 하였으나, 시위대와 팔짱을 끼고 ‘독립만세’를 더욱 소리 높여 절규하며 일제 헌병에 대항하였다. 이와 같은 시위대의 강력한 저항에 당황한 일제 헌병들은 시위대의 선두를 향해 붉은색의 잉크를 뿌리고, 옷에 잉크가 묻은 사람들을 시위대의 주도자로 간주하여 무조건 체포하기 시작하였다. 이로 인해 30여 명이 일제 헌병에 붙잡혔는데, 이때 만세시위의 주도 인물 중 한 사람으로 파악되어 홍범섭·박상종·홍세표·윤석희 등과 함께 청양헌병분견소로 연행되었다. 이후 일제 헌병대의 조사에서 만세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점이 인정되었다. 1919년 4월 6일 청양헌병분견소 즉결심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고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