林晦榮
晦榮1873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7)
관련 사건
- · 1919년 함흥군 함흥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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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07) 함경남도 함흥군(咸興郡) 함흥면(咸興面) 동평리(東坪里) 출신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1919년 당시 나이가 47세이므로 1873년생으로 추정된다. 기독교인이며,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3월 3일 함경남도 함흥군 함흥면 중하리(中荷里)에서 거행될 만세시위 계획에 참여하였다. 1919년 2월 26일 평양 숭실중학교 교사 강봉우(姜鳳羽)가 함흥면 신창리교회에서 함흥지역 목사와 장로들을 대상으로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국제 정세와 향후 독립에 대한 준비를 역설하면서 함흥의 만세운동이 준비되었다. 이어서 함흥면 중하리교회에서 원산(元山)의 광석동교회 장로인 이순영(李順榮)은 3월 1일 원산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리며 함께 궐기할 것을 촉구하였다. 같은 해 2월 28일 중하리교회에서 김두석(金斗錫)·김여학(金麗鶴)·박성호(朴聖浩)·오명근(吳明根)·이순기(李舜基)·이영식(李榮植)·조동훈(趙東薰)·조영신(趙永信)·최명학(崔明鶴)·최영학(崔榮鶴)·한영호(韓泳鎬)·홍기진(洪基鎭) 등과 함께 만세시위 계획을 논의하고, 준비 자금으로 5원에서 100원씩을 갹출하였다. 그리고 3월 3일 최명학이 낙민루(樂民樓)에 올라가서 나팔을 부는 것을 신호로 만세시위를 거행하기로 결정하였다. 함흥에서는 이미 계획된 거사일과는 무관하게 3월 2일 사람들이 모여 산발적으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만세시위의 규모가 커지자 일제 경찰은 헌병과 의용소방대·재향군인까지 동원해 300여 명을 체포하였고, 3월 3일 새벽부터 함흥 전역에서 대대적인 예비검속을 실시하였다. 이 과정에서 만세시위를 준비하던 기독교 지도자들을 포함하여 함산학우회 간부들과 함께 붙잡혀 조사를 받고 재판에 넘겨졌다. 1919년 4월 21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과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해 항소하였고, 같은 해 7월 3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이 취소되었지만 다시 징역 8월을 받았다. 재차 상고하였지만 그해 9월 1일 고등법원에서 최종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박종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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