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범
張慶範1898. 3. 11 ~ 1972. 1. 30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개성군 상도면
- · 대성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98년 3월 11일 경기도 개성군(開城郡) 상도면(上道面) 풍천리(楓川里)에서 태어났다.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개성군 상도면·대성면(大聖面)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초순 개성군 만세시위 소식을 전해듣고, 풍천리의 장태수(張台秀)·김순흥(金順興)·유기윤(柳冀允)·이만석(李萬錫)·장승화(張承和), 연동리의 이기춘(李起春)·신선명(申善明) 등과 함께 논의하여 개성군 상도면·대성면 지역의 만세운동을 결의하였다. 3월 29일 밤 장태수·김순흥·이기춘 등의 동지들과 함께 마을 주민들을 이끌고 만세시위에 돌입하였다. 만세시위에 참여한 주민들을 지휘하여 상도면의 상도리에서 대성면의 풍덕리(豊德里) 읍내까지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면서 만세시위 행진을 전개하였다. 풍덕리를 향해 행진하는 과정에서 만세시위를 목격하고, 독립의 취지에 크게 공감한 풍덕리 주민들이 만세시위에 동참하면서 시위대 규모는 300여 명으로 확대되었다. 장태수·김순흥·이기춘 등과 함께 시위대를 이끌고 풍덕리에 소재한 풍덕헌병분견소로 행진하였다. 시위대를 지휘하여 헌병분견소 건물을 포위하고,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는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일제 헌병이 헌병대 본부로 지원 병력 파견을 요청하는 전화를 걸자, 시위대 중 한 사람이 “저 전화줄을 끊어라. 개성으로 전화하여 우리를 잡으러 온다”고 외쳤다. 이에 장태수·김순흥·이기춘 등과 함께 헌병대의 통신을 방해할 목적으로 대성면 광덕리(光德里) 소재 한다리(漢橋) 부근 전주와 대성면 신죽리(新竹里)의 개성·풍덕·영정포(領井浦)로 통하는 교차로 부근의 전주 등을 찍어 넘기고 쓰러뜨렸다 시위대의 격렬한 시위가 일제 통신시설을 공격하자 일제 헌병대는 시위대를 향해 무차별적인 발포를 시작하였다. 시위대가 해산하는 과정에서 장태수·김기흥·이기춘 등과 함께 헌병대에 붙잡혔다. 1919년 5월 2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과 전신법 위반으로 징역 3년 6월을 받았다. 판결에 불복하여 항소한 결과, 그해 7월 28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감형되어 징역 2년을 받았다. 이에 “조모의 상을 당했기 때문에 조선 민족으로서 독립만세에 참가하지 못한 것이 확실한데, 풍덕주재소로 체포되어 헌병의 심하고 혹독한 구타에 견디지 못하고 남은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허위 진술을 했다”라고 하며 상고하였으나, 같은 해 10월 16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