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덕균
張德均1893. 5. 2 ~ 1968. 6. 30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독립선언서 배포
- · 독립운동 선전문서 출판(경기 광주)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93년 5월 2일 경기도 광주군(廣州郡) 중대면(中垈面) 송파리(松坡里)에서 태어났다.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19년 만세운동 당시 비밀출판을 통하여 독립사상을 고취하였다. 1910년의 ‘한국병합’ 이래 일제의 식민통치에 대한 강한 불만과 함께 독립의 희망을 가지고 생활하던 중, 서울의 만세운동 소식을 듣고 크게 고무되었다. 곧바로 평소 독립에 대해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던 같은 마을의 김준현(金俊賢)과 논의하여 지역 주민들에게 독립사상을 고취시키고, 그것을 바탕으로 만세운동을 조직하기 위해 유인물을 비밀 출판하여 배포하기로 결의하였다. 3월 21일 밤 집에서 김준현과 함께 등사판을 이용하여 비밀리에 「선언서」 20장과 『조선독립신문』 30부를 인쇄하고, 3월 26일을 만세운동의 거사일로 결정하였다. 당시 인쇄한 「선언서」는 ‘조선청년독립단’의 명의로 “조선청년독립단은 우리 2,000만 조선민족을 대표하여 정의와 자유의 승리를 이룬 세계 만국 앞에서 독립을 이룰 것을 선언한다”라는 내용을 담고 있었고, 『조선독립신문』은 「선언서」의 취지와 관련되어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유민임을 선언하며 강권 침략주의인 일본 제국의 굴레를 벗어나려면 모름지기 민족적 독립을 확실하게 함에 있다”라는 내용 등 독립의 필요성과 정당함을 주창하는 다양한 논설이 담겨 있었다. 「선언서」와 『조선독립신문』 각 1부씩을 김준현과 함께 자신의 집에서 같은 마을의 정석호(鄭錫鎬)와 이윤종(李胤鐘)에게 배부하고, 한강(漢江)을 건너 이름을 알 수 없는 사람에게 각 1부를 배부하는 등 3월 25일까지 비밀리에 배포를 지속하면서 독립사상의 고취와 만세운동 계획의 실현에 노력하였다. 이 과정에서 서울의 만세운동 주도자들과 연결되어 서울에서 발행하는 만세운동 관련 인쇄물들을 받아 각 지방으로 배포하는 임무를 담당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활동으로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19년 5월 5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출판법·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판결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그해 6월 26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이에 “자신의 행위는 조선 민족으로서 정의, 인도에 기초하는 의사 발동이고, 범죄가 아니다. 따라서 제1심 및 제2심에서 선고받은 유죄판결은 부당하며 복종할 수 없는 위법”이라는 취지로 상고하였다. 같은 해 8월 11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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