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두희
張斗熙1882. 12. 16 ~ 1930. 2. 6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안동군 길안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82년 12월 16일 경상북도 안동군(安東郡) 서후면(西後面) 성곡동(城谷洞)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안동군 임하면(臨河面) 오대동(梧垈洞)에 거주하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본관은 안동(安東)이고, 자는 광필(光必)이다. 1919년 3월 21일 안동군 길안면(吉安面) 천지시장(泉旨市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촉발된 만세운동은 삽시간에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경북 안동군에서는 3월 13일 이상동(李相東)이 홀로 만세시위를 펼치자, 이에 영향을 받은 예안면(禮安面)과 안동면(安東面) 일대에서도 연이어 대규모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이때 손영학(孫永學)·김정익(金正翼)·김정연(金正演) 등과 함께 길안면 천지시장의 만세시위를 계획하고 이끌었다. 먼저 이들과 함께 만나 만세시위를 실행하기로 뜻을 모으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날인 3월 21일 천지시장에서 거사하기로 뜻을 정하였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을 만세시위에 참여시키기 위해 함께 할 사람들을 규합하였고, 만세시위에 나눠줄 직접 태극기를 제작하였다. 3월 21일 아침 일찍 태극기를 가슴에 품고 천지시장으로 향하였다. 오후 3시경 손영학·김정익·김정연·정성흠(鄭成欽) 등과 함께 ‘대한독립만세’라고 쓴 큰 깃발을 앞세우고 독립만세를 외쳤다. 그러자 장터에 있던 장꾼과 수백 명의 주민들이 호응하며 독립만세를 연호하였다. 이러한 여세를 모아 손영학·김정익·정성흠·정태모(鄭泰摸)·김병도(金炳道)·김술병(金述秉) 등과 더불어 350여 명으로 불어난 시위대를 이끌고 길안면사무소로 이동하였다. 면사무소에 도착하여 손영학이 먼저 깃발을 흔들며 독립만세를 선창하자 시위대와 함께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어서 면장과 면서기에게 만세시위 참여를 촉구하면서 면사무소로 들어가려고 하였지만, 미리 도착해 있던 일제 순사들에게 제지당하였다. 이에 분노한 시위대와 함께 돌을 던져 면사무소 유리창과 출입문을 부수었다. 면사무소에서 격렬하게 투석전을 전개하고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주도자들과 더불어 다시 시위대를 지휘해 독립만세를 부르며 천지경찰관주재소로 향하였다. 그리고 시위대와 함께 주재소 앞에서 독립만세를 연호하고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였지만, 무력을 행사하는 일제 경찰에게 다시 저지당하였다. 이에 분노한 시위대와 함께 창문과 문·가스등에 돌을 던지며 저항하였다. 이러한 만세시위는 밤늦게까지 격렬하게 전개되었다. 자정 무렵 주재소 일제 경찰들이 출동해 공포를 발사하며 시위대를 강제로 해산시켰다. 이후 일제 경찰에게 붙잡혀 조사를 받고 재판에 넘겨졌다. 1919년 5월 3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과 소요죄로 징역 3년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지만, 같은 해 5월 23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정상우⋮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