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남
張永南1878. 7. 8 ~ 1971. 10. 10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3)
관련 사건
- · 칠곡군 석적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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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3) 1878년 7월 8일 경상북도 칠곡군(漆谷郡) 석적면(石積面) 중동(中洞)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장삼산(張三山)이다. 1919년 4월 9일 칠곡군 석적면 중동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1일 시작된 만세운동은 삽시간에 전국으로 확대되었다. 경북 칠곡군에서도 이 소식이 전파되어 만세운동이 촉발되었다. 경북 칠곡 석적면 중동의 만세운동은 양반 장지희(張祉熙)·장영창(張永昌)·장도식(張道植)에 의하여 주도되었다. 이들은 일제가 조선을 강점한 것에 분개하면서 국권 회복을 희망해 오던 중, 각지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좋은 시기라고 판단하였다. 마침 이들은 4월 8일 밤 근처 선산군(善山郡) 구미면(龜尾面) 임은동(林隱洞)에서 유지 강용준(姜龍俊)·유시동(劉時東)을 중심으로 만세운동이 계획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였다. 이 계획은 성공적으로 이루어져서 4월 8일에 임은동 일대의 산에서 300여 명의 사람들이 모여 밤이 깊도록 ‘독립만세’를 외친 후 해산하였다. 이를 계기로 이들은 석적면 중동 일대에서도 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결심하고, 4월 9일 같은 동리에 사는 장지희의 형 장철희(張哲熙)의 집에서 회합하여 이날 밤 석적면 중동에서 만세운동을 단행하기로 결정하였다. 4월 9일 밤 9시 장지희·장영창을 비롯한 마을 청년 22명과 함께 41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마을 동쪽의 뒷산으로 올라가 대한 ‘독립만세’를 외치고 시위를 전개하였다. 하지만 곧바로 달려 온 일제 경찰에 의하여 참가자 중 21명과 함께 붙잡혔다. 체포된 21명 중에 주도자인 장지희·장영창을 비롯하여 장영옥(張永鈺)·장영석(張永錫)·장영희(張永希)·장두박(張斗珀)·김득룡(金得龍) 등 모두 8명이 재판에 회부되었다. 재판에 회부 된 이들 중 가장 고령(高齡)이었다. 1919년 5월 24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5월을 받고 대구감옥에서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홍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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