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조
張永眺1870. 8. 24 ~ 1947. 3. 20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칠곡군 석적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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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70년 8월 24일 경상북도 칠곡군(漆谷郡) 석적면(石積面) 성곡동(城谷洞)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한자를 달리한 장영조(張永駣)를 썼다. 양반 출신으로 유학(儒學)을 공부하여 장참봉(張參奉)으로도 불렸다. 1919년 4월 9일 칠곡군 석적면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칠곡군의 만세운동은 1919년 3월 초와 4월 초에 크게 두 차례에 걸쳐 일어났다. 3월 7일 전국 각처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의 소식이 독립선언서 20장을 가지고 칠곡으로 돌아온 계성학교 학생 이영식(李永植)에 의해 칠곡군 인동면(仁同面)의 이상백(李相佰)에게 전달되면서 시작되었다. 이들은 3월 12일 밤에 칠곡군 인동면 진평동(眞坪洞) 마을 뒷산에서 주민 200여 명과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어 3월 14일에는 김도길(金道吉)·박봉술(朴鳳述)·김성윤(金性允)이 주도하여 다시금 인동면 진평동에서 200여 명의 사람들을 모아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이후 칠곡 지역에서 만세운동이 다시 시작된 것은 한 달 여가 지난 4월 초였다. 4월 9일 약목면(若木面) 평복동(平福洞)과 석적면 중동(中洞), 석적면 성곡동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났으며, 석적면 성곡동의 만세운동은 4월 10일에도 한 차례 더 발생하였다. 평소 국권 회복을 염원하고 있던 중 1919년 3월 초부터 전국적으로 ‘독립만세’를 부르는 운동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전해 듣고는 이를 실천할 기회를 보고 있었다. 그러던 중 4월 초 이웃 지역인 선산(善山)에서 만세운동이 연이어 일어났다. 더욱이 4월 3일 선산군 해평면(海平面) 해평동(海平洞)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은 주재소에 투석을 하고, 헌병경찰들이 총탄을 발사하는 등 격렬한 양상을 보였다. 4월 8일에는 석적면 성곡동의 인근인 구미면(龜尾面) 임은동(林隱洞)에서도 유지 강용준(姜龍俊)·유시동(劉時東)을 중심으로 300여 명이 모여 밤이 깊도록 ‘독립만세’를 외친 후 해산하였다. 이 소식을 접한 후 장병규(張柄圭)·장준식(張俊植)·장재식(張在植) 등과 함께 석적면 성곡동에서도 만세운동을 일으킬 것을 계획하였다. 4월 9일 저녁 성곡동의 많은 주민들을 찾아다니며 만세운동에 참여할 것을 역설하였다. 그 중에는 소작인 박팔문(朴八文)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와 같은 노력으로 4월 9일 밤 8시 성곡동 북쪽의 밭 가운데에서 마을 주민 약 50명이 모여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들은 다음날인 4월 10일 밤 10시에도 같은 장소에 모여 다시 한 번 ‘독립만세’를 외치며 행진하였다. 이틀간 전개된 만세 운동으로 시위에 참여했던 마을 주민 중 21명이 붙잡혔으며, 박팔문과 함께 주도자로 지목되어 재판에 넘겨졌다. 1919년 5월 17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2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한 결과, 같은 해 6월 17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8월로 감형되었다. 재차 상고하였으나, 그해 9월 1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홍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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