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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창

張永昌

1890. 10. 10 ~ 1939. 10.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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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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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칠곡(漆谷)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칠곡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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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관련 사건

  • · 칠곡군 석적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2) 1890년 10월 10일 경상북도 칠곡군(漆谷郡) 석적면(石積面) 중동(中洞)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장원촌(張院村)이다.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19년 4월 9일 칠곡군 석적면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칠곡군 만세운동은 1919년 3월 12일 인동면 진평동에서 시작되어, 4월 10일 석적면 성곡동(城谷洞) 시위에 이르기까지 네 곳에서 여덟 차례 벌어졌다. 먼저 인동면 진평동에서 3월 12일부터 14일까지 만세시위가 전개된 후, 이 소식이 인근 마을에도 전파되었다. 3월 27일에는 인근의 성주군(星州郡) 선남면 소학동에서, 4월 2일 성주면 시장 만세운동, 벽진면 해평동 만세운동, 4월 3일 지사면 수륜동, 4월 6일에는 대가면 도남동, 월항면 안포동으로 번져갔다. 이어 4월 8일 밤에 선산군(善山郡) 구미면(龜尾面) 임은동(林隱洞)에서 유지 강용준(姜龍俊)·유시동(劉時東)을 필두로 하여 300여 명의 사람들이 모여 밤늦게까지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후 4월 9일 약목면(若木面) 평복동(平福洞)과 석적면 중동에서도 마을 청년들이 ‘독립만세’를 외쳤는데, 이때 만세운동에 참가하여 시위를 주도하였다. 평소 일제가 조선을 강점한 것에 분개하다가, 주변지역에서 전개되는 만세운동을 목격하고 중동에서도 만세운동을 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리하여 4월 8일에 장지희(張祉熙)·장도식(張道植)과 함께 장지희의 형 장철희(張哲熙)의 집에 모여, 4월 9일에 사람들을 모아 중동 동쪽 뒷산에 올라 ‘독립만세’를 외치기로 결의하였다. 4월 9일 밤 9시에 장영창과 장지희를 필두로 석적면 중동 거주 청년 22명은 뒷산에 올라 ‘독립만세’를 크게 외치며 만세시위를 진행하였다.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출동한 일제 경찰이 무차별 체포하는 과정에서 마을 청년 21명과 함께 붙잡혔고, 8명이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5월 24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한 결과, 그해 6월 25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8월로 감형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홍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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