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용환
張瑢煥1894. 9. 4 ~ 1949. 4. 19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2)
관련 사건
- · 1919년 의령군 부림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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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02) 1894년 9월 4일 경상남도 의령군(宜寧郡) 부림면(富林面) 신반리(新反里)에서 태어났다.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19년 3월 15일 부림면 신반리에서 전개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의령군의 만세시위는 읍내 동동(東洞)에 거주하는 구여순(具汝淳)으로부터 시작되었다. 1919년 서울에서 시작된 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전파되는 가운데 상경했다가 만세시위를 경험한 구여순이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귀향하였다. 그리고 의령군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심하고 주도할 인사들을 규합하였다. 의령군 읍내에서 병원을 하던 정용식(鄭容軾)을 비롯해 최정학(崔正學)·이우식(李祐植)·김봉연(金琫淵) 등과 회합하고 3월 14일에 만세시위를 벌이기로 결의하였다. 그리고 최정학은 부림면으로 가서 정주성(鄭周成)에게 독립선언서를 건네주면서 부림면에서도 만세시위를 전개할 것을 독려하였다. 정주성이 부림면의 만세시위를 논의하기 초대하자 최한규(崔翰圭)·황상환(喚想煥)과 함께 방문하였고, 이들과 논의해 신반리 장날인 3월 15일에 만세시위를 거행하기로 결정하였다. 이어서 정주성·최한규·황상환과 더불어 만세시위에서 사용할 태극기를 제작하고, 거사를 주도할 인사들을 규합하였다. 3월 15일 정오경 정주성·최한규·황상환 등과 함께 신반리 장터에서 모여 있던 주민들에게 태극기를 나누어주면서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였다. 신반리 장터에서 만세시위가 일어나자 출동한 일제 군경들은 총검을 휘두르면서 시위대를 무력으로 해산시켰고, 이를 주도하던 인사들을 색출해 연행하였다. 그 과정에서 정주성·최한규·황상환·김용구(金容九)·최영렬(崔永烈)·박재선(朴載善)·박우백(朴又伯) 등과 함께 붙잡혔다. 이 일로 1919년 5월 26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았다. 같은 해 12월 23일 가출옥될 때까지 경성감옥에서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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