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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철

金南哲

1909. 10. 24 ~ 1980. 1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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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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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무안(務安)학생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남도 무안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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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광주농업학교 독서회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광주학생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909년 10월 24일 전라남도 무안군(務安郡) 현경면(玄慶面) 송정리(松亭里)에서 태어났다. 1927년 11월 광주농업학교 학생인 김복만(金福萬)·김재룡(金在龍)·문승수(文升洙)·유상걸(柳上杰)·유치오(兪致五)·정동수(鄭東秀)·주당석(朱唐錫) 등이 김태호(金台鎬)의 집에 모여 문승수가 ‘사회과학 연구’를 제안하자, 참석자들은 제안에 찬동하였다. 1929년 3월 유치오와 주당석이 졸업하자, 당시 광주농업학교 3학년에 재학하던 중 권수동(權壽童)·김순복(金順福)·이영범(李榮範)·정욱(鄭昱)·조길룡(曺吉龍) 등과 함께 동지들을 3반으로 나누고, 김남철·이영범·조길룡이 각 반의 책임자가 되었다. 이 연구모임은 그해 6월 참자가가 20여 명에 이르렀다. 같은 해 6월 하순경 권수동·김문일(金文一)·김복근(金福根)·김종기(金鍾基)·김현수(金玄洙)·박석진(朴石珍)·박종주(朴鍾柱)·송두현(宋斗鉉)·윤익하(尹益夏)·이영범·장재성·정욱·정해두(丁海杜)·조길룡·최정기(崔貞基)·최차도(崔次道)·홍원표(洪元杓) 등 20여 명과 함께 무등산(無等山)에서 회합하여 항일 학생 비밀결사인 광주농업학교 독서회를 조직하고 부서 및 결의사항을 정하였다. 이때 김순복(金順福)·정욱·최정기와 함께 조직교양부 위원으로 선임되었다. 회원을 4그룹으로 나누어 그룹마다 연구하기로 하였는데 그해 9월 윤익하의 집에 모여 동회(同會)를 해산하였다. 그러나 며칠 뒤 김순복의 집에서 그동안 모임에 열심하지 않았던 박종주·윤익하를 제외하고 동일한 독서회 재조직을 합의하였다. 같은 해 10월경 광주군 광주면 수기옥정(須奇玉町)에 있는 자신의 방에서 권수동·정해두와 함께 모임을 갖고 광주농업학교의 3학년 동급생들을 권유하여 비밀결사를 조직하기로 합의하였다. 그러던 중, 1929년 11월 3일 광주학생항일운동이 일어나자 이에 참가하여 활동하였다. 11월 10일에는 오쾌일(吳快一)·이영범(李榮範)·정욱·황상남과 함께 광주읍내 금계리(錦溪里) 박기석(朴紀錫)의 집에 모여 제2차 시위에 대하여 모여 논의하고, 11월 12일에 거사하기로 계획하였다. 거사 당일인 11월 12일 이른 아침 조길룡으로부터 배부받은 전단을 교실에 배포하고, 첫째 수업시간 중에 교실을 뛰어나와 동 회원인 박석진·정욱·최정기 등과 함께 같은 학교 생 200여 명을 이끌고 학교에서 형무소에 이르는 광주고등보통학교 부근까지 100미터 정도를 시위행진하였다. 이 일로 일본 경찰에 붙잡혀 모진 고문을 당하였다. 1930년 10월 18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3년 6개월 형을 받고 항소하여 1931년 6월 13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겪었다. 1930년 1월에서 3월 중에 광주농업학교에서 퇴학당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윤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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