張璘植
張植1879. 7. 7 ~ 1954. 8. 12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0)
관련 사건
- · 밀양군 단장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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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10) 1879년 7월 7일 경상남도 밀양군(密陽郡) 단장면(丹場面) 고례리(古禮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4일 밀양군 단장면 대룡리(臺龍里)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4월 초순 같은 면 구천리(九川里)에 위치한 표충사(表忠寺)에서 승려 몇 명이 고례리를 방문하였다. 이들은 지역민들에게 4월 4일 밀양군 단장면 대룡리 장날에 만세시위가 계획되어 있다는 점을 전하면서 참여를 독려하였다. 이에 찬동하여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당시 표충사 승려들은 통도사(通度寺) 승려들과 비밀리에 회합을 갖고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이장옥(李章玉)·이찰수(李刹修)·오학성(吳學成)·손영식(孫永植)·김성흡(金性洽)·구연운(具蓮紜)·오응석(吳應石)이 중심이 된 승려들은 격문과 태극기를 만들며 만세시위를 준비하였다. 이들은 4월 4일 대룡리 장날에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정하였으며, 만세시위 확산을 위해 단장면 일대 주민들의 참여를 독려하였던 것이다. 거사 당일인 4월 4일 아침에 마을 사람들과 함께 대룡리 장터로 향하였다. 표충사 승려들과 학생들은 대룡리 장터에 집결해서 사람들에게 태극기를 나누어 주면서 시위 참여를 독려하였다. 정오 무렵 표충사 승려들은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면서 5,000여 명의 시위대를 이끌고 행진을 시작하였다. 마을 사람들과 함께 시위대에 합류해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장터를 순회하였다. 이후 시위대는 대룡리 헌병주재소로 향하였다. 그곳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일본 헌병대와 대치하였다. 투석전이 전개되었으며, 일부 시위대는 주재소로 진입하여서 헌병들과 충돌하였다. 대룡리 만세시위가 확대되자 일제 당국은 추가 헌병 병력을 파견하였다. 오후 1시 30분 경에 일제 헌병대는 시위대를 향해서 발포를 하였으며, 시위대는 해산하였다. 하지만 일본 헌병의 강경 진압에 분노한 주민들은 이튿날인 4월 5일 다시 대룡리 헌병주재소로 가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그러자 일본 헌병대는 시위대를 진압하는 한편, 대룡리 만세시위에 참여한 인사들을 연행하였다. 이를 피하여 숨어지내다 뒤늦게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었다. 1920년 3월 18일 부산지방법원 밀양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4월을 받아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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