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일홍
張逸洪1860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12)
관련 사건
- · 신흥군 동상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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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12) 함경남도 신흥군(新興郡) 동상면(東上面) 곤동리(困洞里) 출신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1919년 당시 60세로, 1860년생으로 추정된다.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3월 16~17일 신흥군 동상면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1919년 3월 1일 직후부터 신흥군은 인접해 있는 함흥(咸興) 등을 통해서 만세시위 소식을 전달받을 수 있었다. 신흥군의 만세시위는 3월 9일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되었고, 3월 14일 이후 동상면에서도 만세시위가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신흥군 내에서 일어나는 만세시위 소식을 들은 이연숙(李璉淑) 등은 3월 14일 정오 무렵 동상면 신성리(新成里)에서 만세시위를 일으켰다. 이연숙은 주민들과 함께 원풍리(元豐里)로 행진하여 150여 명의 주민들과 합류하여 원풍리헌병주재소와 면사무소 앞에서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3월 16~17일에도 신흥군 동상면 만세시위가 지속되었는데 이를 주도하였다. 3월 16일 오후 동상면 광대리(廣大里)에서는 한영호(韓永虎)·이창진(李昌鎭), 광대리 출신의 한정원(韓鼎元)·이완규(李完圭) 등을 이끌고 만세시위를 주도하였으며 500명의 군중이 시위대에 합류하였다. 3월 17일에도 아침부터 한대리(漢垈里)의 광업소에서 사람들을 모이게 하였다. 광업소에 집결한 한영호·이창진·한정원·이완규를 비롯한 마을 사람들과 함께 만세시위를 일으켰다. 일제 군경에 의해서 3월 16~17일 신흥군 동상면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는 이유로 붙잡혀서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7월 5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과 소요죄로 징역 4년을 받았다. 이에 항소한 결과, 같은 해 8월 21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원판결 취소 후 징역 3년을 받았다. 다시 상고하였으나, 그해 10월 18일 고등법원에서 최종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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