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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일환

張一煥

1882. 4. 8 ~ 1919. 3.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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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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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청주(淸州)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북도 청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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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관련 사건

  • · 청주군 미원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1) 1882년 4월 8일 충청북도 청주군(淸州郡) 미원면(米院面, 현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내산리(內山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촉발한 만세시위는 곧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이러한 소식이 충북 청주군에도 전파되자 당시 ‘쌀안장터’라고 불리던 미원장터에서 1919년 3월 30일부터 3월 31일까지 이틀간 매우 격렬한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이 만세시위는 날짜별로 각각 서로 다른 주도 세력에 의해 전개되었는데, 청주군 내에서 일어난 만세운동 중 최대 규모의 만세시위로 기록되었다. 3월 30일 만세시위는 미원면의 신경구(申敬求)·이용실(李容實)·이수란(李水蘭) 등이 주도하였고, 3월 31일 만세시위는 낭성면(琅城面)의 오교선(吳敎善)과 박우동(朴雨東)이 주도하였다. 3월 30일 마을 주민들과 함께 신경구·이용실·이수란 등이 주도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청주군에서는 이미 상당히 이른 시기인 3월 7일, 1907년의 정미의병(丁未義兵) 때 청주군 일대에서 의병장으로 활약했던 한봉수(韓鳳洙)의 주도로 서문장터 우시장 입구에서 청주군 내 최초의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만세시위의 소식이 전파되면서 미원면 일대에서는 3월 하순부터 만세운동에 대한 전단이 뿌려지는 등 독립 만세운동의 분위기가 달아오르고 있었다. 이때 인근 지역으로 만세운동을 확산시키려 노력하고 있던 한봉수에게서 “3월 1일 이래 전국적으로 조선의 독립을 위한 독립 만세 운동이 전개되고 있으니, 향리에서도 즉시 만세운동을 일으킬 것을 당부한다”는 내용의 비밀 연락을 받았다. 3월 1일 이래 전국 곳곳에서 만세 운동이 전개되고 있는 상황을 파악하고 향리에서의 참여 방법을 고민하던 중, 한봉수의 연락을 받고 즉시 주변에 뜻이 맞는 지인들과 만세운동을 계획하기로 결의하였다. 만세운동을 결의한 즈음, 3월 30일 미원장터의 장날을 기하여 대대적인 만세시위가 전개될 것이라는 소식을 접하고, 주민들과 함께 이 만세시위에 합류할 것을 결정하였다. 3월 30일 마을 주민들과 함께 미원장터로 나와 만세시위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오후 2시경 미원장터의 사거리에 태극기가 올라오고, 뒤따라 ‘대한독립만세’의 외침이 들렸다. 기다리던 만세운동의 시작이었다. 신경구 등이 태극기를 치켜들고 장터에 나온 주민들에게 격렬한 어조로 한국 독립의 당위성을 연설하고,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였다. 이들은 독립을 위해 만세운동에 동참하라며 장터에 나온 주민들에게 호소하고 있었다. 이에 즉시 호응하여 마을 주민들과 함께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신경구 등의 지휘에 따라 큰 목소리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장터의 곳곳을 행진하였다. 만세시위가 발생하자, 미원면 헌병주재소의 헌병들이 곧바로 출동하여 만세 시위대의 행진을 가로막았다. 헌병군조(憲兵軍曹) 우에다 리노스케(植田利之助) 등의 일제 헌병들이 고압적 자세로 만세시위 즉각 해산을 명령하였으나, 이를 거부하고 더욱 큰 목소리로 ‘대한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시간이 갈수록 더욱 많은 주민들이 만세시위에 참여하여 시위대는 1,500여 명의 규모로 확대되었다. 중과부적이었던 일제 헌병들은 만세시위의 즉각 해산을 포기하고, 청주로 지원 병력을 요청하였다. 동시에 만세시위를 주도한 신경구를 주재소로 강제 연행하였다. 만세시위를 주도하던 신경구가 일제 헌병에게 강압적으로 연행되는 모습은 만세 시위대를 크게 자극시켰다. 시위대는 신경구를 구출하기 위해 헌병주재소로 달려갔다. 연행된 신경구를 대신한 이용실의 지휘에 따라 헌병주재소 앞에서 “신경구를 석방하라”고 강력하게 요구하는 시위를 전개하였다. 그러나 헌병 주재소장은 시위대의 요구를 고압적인 자세로 거부하였다. 이에 이수란, 성규원(成奎垣), 윤인보(尹仁甫) 등이 주재소로 쳐들어가 일제 헌병주재소장의 태도에 거세게 항의하였다. 오히려 일제 헌병들은 이들마저 체포하려 들자 일제 헌병대의 태도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상황이 이러한 지경에 이르자 이용실이 만세시위대를 향해 “주재소를 파괴하라”, “주재소장을 죽여라”라고 외치면서 솔선하여 주재소를 향해 돌을 던지기 시작하였다. 이에 호응하여 만세 시위대의 선두에서 주재소를 향해 돌을 던져 주재소의 시설과 집기 등을 파괴하는 격렬한 만세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미원면의 헌병대에게서 지원 병력 파견을 요청받은 일제 당국은 청주에서 지원병력을 미원면으로 급파하였다. 미원면의 일제 헌병들은 청주의 헌병들이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만세 시위대를 향해 무차별적인 총기 발포로 만세시위대를 강제 해산시켰다. 이 과정에서 만세 시위대의 선두에서 일제 헌병에 맞서 격렬하게 저항하다가 총에 맞아 이병선(李炳善)과 함께 현장에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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