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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종건

張悰鍵

1895. 3. 10 ~ 1966. 9.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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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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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남 대동(大同)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남도 대동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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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서울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95년 3월 10일 평안남도 대동군(大同郡) 대동강면(大同江面) 칠산리(七山里)에서 태어났다. 보성전문학교 법과 출신으로, 1919년 당시 경성서적조합 서기로 근무하였다. 1919년 3월 1일 탑골공원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이날 오후 2시 탑골공원에서 학생들과 함께 독립선언식을 거행하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면서 2시 반 쯤에 공원에서 나와 서울 시내를 순회하였다. 이 시위 행진은 남대문을 거쳐 미국영사관·대한문·광화문·서대문·프랑스영사관을 지나 조선은행(현 한국은행 화폐박물관) 앞까지 이어졌다. 만세 시위에 참여한 후 천도교도이자 천도교 월보 편집인인 이종린(李鍾麟)에게서 『조선독립신문』 인쇄를 부탁받았다. 제2·3·4호의 원고를 받아 자신의 근무지인 경성서적조합 사무실에서 등사판을 이용하여 임승옥(林承玉)·김영조(金榮洮) 등과 제2호 6백여 장을 인쇄해 이종린에 건넸다. 이후 이종린이 일제에 체포되자 스스로 『조선독립신문』을 발간하기로 하였다. 최치환(崔致煥)·최기성(崔基星)·강태두(姜泰斗)·임승옥 등과 함께 등사판을 이용하여 3월 13일과 3월 15·16일 서울 광화문통 유병륜(劉秉倫)의 집에서 자신이 직접 원고를 쓴 제5호, 제6호 각각 700장, 900장 씩을 인쇄하여 배포하였다. 3월 22일과 3월 24일 경기도 고양군(高陽郡) 용강면(龍江面) 공덕리(孔德里) 남정훈(南政勳)의 집에서 『조선독립신문』 제8호, 제9호와 부록을 스스로 집필하여 최치환과 함께 인쇄하고 배포하다가 붙잡혔다. 1920년 2월 2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과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3년(미결구류일수 중 180일 본형 산입)을 받았다. 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겪다가 1921년 5월 28일 풀려났다. 1922년 6월 평양에서 설립된 조선물산장려조합의 발기인에 참여하였다. 『동아일보』·『조선일보』·『시대일보』·『조선중앙일보』 등을 거치면서 신문사 직원으로 근무하였다. 광복 후에도 『대공일보』와 『서울신문』에서 근무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윤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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