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판돌
張判乭1897. 3. 10 ~ 1958. 7. 6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4)
관련 사건
- · 충남 청양군 정산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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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04) 1897년 3월 10일 충청남도 청양군(靑陽郡) 정산면(定山面) 서정리(西亭里)에서 태어났다. 정산면의 만세시위는 백곡리(白谷里)의 유림으로부터 촉발되었는데, 1919년 4월 5일의 정산시장 만세시위와 권흥규(權興圭)의 사망을 계기로 확산된 4월 6일 만세시위의 두 단계로 구분된다. 정산시장의 만세시위는 매우 촉박하게 진행되었다. 홍범섭(洪梵燮)은 서울(京城)에서 독립선언문을 가지고 귀향한 후, 4월 5일 오전 자신의 집에서 임의재(任毅宰)·윤석희(尹錫禧)·홍세표(洪世杓)·박상종(朴商鍾) 등과 만세운동을 하기로 의기투합하였다. 이날 오후 3시경 홍범석 등은 서정리(西亭里)의 정산시장으로 나와 주민들에게 태극기를 배포하며 만세운동을 시작하였다. 하지만 곧바로 일제 헌병이 출동하여 해산을 명령하면서 만세시위를 주도한 홍범섭 등 30여 명을 청양헌병분견소로 연행하였다. 평화적인 만세시위를 전개한 사람들을 폭력적으로 연행하는 일제 헌병의 탄압에 분노하여 다른 주민들과 함께 만세시위에 동참하여 적극적으로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연행자들을 대신하여 만세시위대를 이끈 정산향교(定山鄕校) 직원(直員) 권흥규의 지휘에 따라 헌병주재소로 달려가서 연행자 석방을 요구하며 격렬한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 과정에서 일제 헌병의 발포로 권흥규가 총탄에 맞아 현장에서 사망하였다. 다음날인 4월 6일 권흥규의 친인척 등 전날 시위에 참여했던 사람들과 함께 고인의 운구를 위해 헌병주재소로 갔다. ‘배일사권공지구(排日士權公之柩)’라는 명정(銘旌)을 앞세운 권흥규의 운구행렬이 지나가는 길목마다 많은 사람들이 운구 행렬에 합류하였다. 지곡리(池谷里)를 경유할 즈음에는 1,000여 명의 규모로 확대되었다. 이들과 태극기를 흔들며 ‘조선독립만세’를 연창하면서 행진하였다. 일제는 정산·청양·공주(公州)의 헌병들까지 급파하여 만세시위와 함께 진행된 운구행렬에 무차별적으로 발포하였다. 이로 인해 권흥규의 조카딸 최윤안(崔胤安)·장응렬(張應烈)·윤광원(尹光遠) 등 여러 참여자가 사망하고,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이후 일제 헌병의 만세시위 참여자에 대한 색출, 검거과정에서 붙잡혔다. 조사과정에서 이틀 동안의 만세시위에 적극 가담한 점이 인정되어 4월 22일 청양헌병분견소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고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4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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