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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팽록

張彭祿

1891. 4. 21 ~ 1955. 1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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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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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청양(靑陽)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청양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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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4)

관련 사건

  • · 충남 청양군 정산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4) 1891년 4월 21일 충청남도 청양군(靑陽郡) 정산면(定山面) 서정리(西亭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장판록(張判祿)이며, 향리에서 농업에 종사하였다. 정산면의 만세시위는 백곡리(白谷里)의 유림으로부터 시작되어 1919년 4월 5일의 정산시장 만세시위와 사망한 권흥규(權興圭)의 시신 운구를 계기로 목면(木面)으로까지 확산된 4월 6일 만세시위의 두 단계로 구분된다. 백곡리의 홍범섭(洪梵燮)은 고종의 장례에 참석하였다가 만세운동을 목격하고, 독립선언문을 가지고 귀향하였다. 자신의 집에서 임의재(任毅宰)·윤석희(尹錫禧)·홍세표(洪世杓)·박상종(朴商鍾) 등과 협의하여 만세운동을 결의하였다. 이들은 정산시장의 장날인 4월 5일에 만세운동을 전개할 것을 결정하고 사전에 태극기를 제작하는 등 구체적으로 만세시위를 위한 준비를 하였다. 4월 5일 오후 3시경 홍범석 등은 정산시장으로 나와 주민들에게 태극기를 배포하며 만세운동을 시작하였다. 하지만 곧바로 일제 헌병이 출동하여 해산을 명령하면서 만세시위를 주도한 홍범섭 등 30여 명을 청양헌병분견소로 연행하였다. 시장에 나왔다가 일제 헌병의 만세시위에 대한 폭력적인 진압을 보고 분노하여 다른 주민들과 함께 만세시위에 동참해서 적극적으로 ‘조선독립만세’를 외치었다. 연행자들을 대신하여 만세시위대를 이끈 정산향교(定山鄕校) 직원(直員) 권흥규의 지휘에 따라 헌병주재소로 달려가서 연행자 석방을 요구하며 격렬한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 과정에서 일제 헌병의 발포로 권흥규가 총탄에 맞아 현장에서 사망하였다. 다음날인 4월 6일 권흥규의 친인척 등 전날 시위에 참여했던 사람들과 함께 고인의 운구를 위해 헌병주재소로 갔다. 권흥규의 운구행렬이 ‘배일사권공지구(排日士權公之柩)’라는 명정(銘旌)을 앞세우고 지나가는 길목마다 많은 사람들이 운구에 참여하였다. 지곡리(池谷里)를 경유할 즈음 운구행렬 속에서 ‘독립만세’라고 쓰인 종이 깃발이 돌려지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 ‘조선독립만세’의 구호가 터져 나오기 시작하였다. 운구행렬이 만세시위로 전환된 것이다. 일제는 정산·청양·공주(公州)의 헌병들까지 급파하여 만세시위와 함께 진행된 운구행렬에 무차별적으로 발포하였다. 이로 인해 권흥규의 조카딸 최윤안(崔胤安)·장응렬(張應烈)· 윤광원(尹光遠) 등 여러 참여자가 사망하고,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이날의 만세시위 이후 일제 헌병의 만세시위 참여자에 대한 색출, 검거과정에서 붙잡혀서 청양헌병분견소로 연행되었다. 조사과정에서 이틀 동안의 만세시위에 적극 가담한 점이 인정되어 4월 22일의 즉결심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고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4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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