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형관
張炯觀1903. 12. 27 ~ 1951. 2. 22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관련 사건
- · 울진군 원남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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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2) 1903년 12월 27일 강원도 울진군(蔚珍郡, 현 경북 울진군) 근남면(近南面) 수곡리(水谷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11일 울진군 원남면(遠南面) 매화리(梅花里) 장터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울진군 원남면 매화리에서 사는 윤병관(尹炳寬)은 서울 만세운동 소식과 독립선언서를 접하고 울진군에서의 만세운동을 결심하였다. 윤병관은 4월 5~6일 동안 뜻이 맞는 동지들을 매화리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여 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계획하였다. 이때 북면(北面) 고목리(古木里)에 사는 전병겸(田炳謙), 원남면 금매리(金梅里)의 윤학규(尹學逵), 매화리의 윤강규(尹康逵)·최효대(崔孝大) 등과 함께 윤병관 집으로 찾아갔다. 여기서 다른 동지들과 함께 만세운동을 일으킬 것을 결의하고 세부적인 계획을 수립하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의거 날짜는 4월 11일, 장소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매화리 장터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만세운동에 쓸 태극기는 각자 만들어 장터에 가져오기로 하였다. 거사 이틀 전인 9일에는 윤병관·전병겸·최중모·윤상흥(尹相興) 등과 최효대의 아버지 집 안 오두막에서 만나 거사 당일에 쓸 대형 태극기와 대한독립만세라고 쓴 현수막을 제작하였다. 또한 만세운동의 세부 진행 내용도 정하며 많은 논의를 하였다. 거사 당일인 4월 11일, 매화리 장터에 대한독립기(大韓獨立旗)라고 쓴 작은 태극기를 몰래 숨기고 도착하였다. 머지않아 만세운동을 함께할 인사들도 하나 둘 장터로 모이기 시작하였다. 오후 3시경 동지들과 함께 품속에서 태극기를 꺼내어 장터에 모인 군중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어서 최효대는 매화리 장터 옆에 위치한 원남면 면사무소 정문 앞에 현수막을 걸고 대형 태극기를 높이 흔들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최효대의 선창을 신호로 동지들과 함께 태극기를 꺼내며 대한독립만세를 불렀다. 이들의 만세소리에 장터에 있던 30여 명의 군중이 동참하며 만세시위가 고조되었다. 그러나 만세시위를 제지하기 위해 급파된 일제 헌병들은 주도 인물들을 체포하고 군중을 해산시켰다. 이때 다른 동지들과 함께 붙잡혀 태극기를 몰수당하고 울진경찰서로 이송되었다. 1919년 4월 19일 대구지방법원 울진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아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정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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