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석윤
全錫允1894. 11. 5 ~ 1966. 11. 10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05)
관련 사건
- · 파리장서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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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포장(2005) 1894년 11월 5일 경상남도 합천군(陜川郡) 쌍책면(雙冊面) 사향리(泗陽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완산(完山)이고, 자(字)는 자중(子中), 호(號)는 유제(惟齊)이다. 이명은 전석탁(全錫鐸)·김석탁(金錫鐸)이다. 공산(恭山) 송준필(宋浚弼)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곽종석(郭鍾錫)과 김창숙(金昌淑)이 중심이 되어서 경상도·전라도·충청도 유림이 조직했던 제1차 유림단 의거, 즉 파리장서(巴里長書) 사건에 참여하였다. 137명의 유림의 일원으로 독립을 탄원하는 유림단 탄원서에 서명하였다. 상하이(上海)로 건너간 김창숙은 2,674자에 이르는 파리장서를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전달하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파리장서를 신한청년당(新韓靑年黨) 대표로 파리에 있었던 김규식(金奎植)에게 전달하였으며, 이를 영어로 번역하는 한편 3,000부를 인쇄해서 파리강화회의와 중국을 비롯해서 국내 각지로 배포하였다. 파리장서의 존재는 4월 2일 상주(尙州) 시위과정에서 처음 확인되었다. 일제 군경은 상주 시위를 주도한 송회근(宋晦根)을 심문하는 과정에서 유림들이 중심이 되어서 탄원서를 작성하고, 상하이를 거쳐서 파리강화회의로 전달하고자 한 사실을 확인하였다. 파리장서의 존재를 확인한 일제 군경은 곽종석을 비롯해서 20명의 인사를 연행하였다. 일제 경찰은 연행한 인사들을 혹독하게 조사하였지만, 이들은 파리장서에 서명한 137명 전원에 대한 신원을 밝히지 않았다. 일제 군경이 파리장서 한문본을 입수하여 관련 인사들을 체포하였으나, 거주지를 경상남도 합천군이 아닌 충청남도 홍성군(洪城郡)으로 기록하여 체포를 피하였다. 1936년 동향 출신의 유학자 전규환(全奎煥)의 유고집 『소심정문집(小心亭文集)』의 발문 작업에 참여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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