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응주
全應珠1895. 6. 9 ~ 1950. 3. 31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5)
관련 사건
- · 의성 안평면 일대(3.15~19)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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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5) 1895년 6월 9일 경상북도 의성군(義城郡) 안평면(安平面) 창길동(倉吉洞)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한자를 달리한 전중환(全重煥)을 사용하였다.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의성군 안평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17일 밤 의성군 안평면 만세시위에 합류하였다. 합류에 앞서서 형제인 전순환(全順煥)과 함께 마을의 구장 이용빈(李龍斌)에게 “마을 사람들을 지휘하여 만세를 부르게 하라”고 권유하였다. 대사동(大司洞)을 출발한 시위대가 괴산동(槐山洞)·박곡동(朴谷洞)·석탑동(石塔洞)·신월동(新月洞)·하령동(河寧洞) 등 각 마을을 거치면서 약 800여 명의 주민을 규합하였다. 이들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외치었다. 3월 18일 밤 재차 시위 행렬에 동참하였다. 대사동에서 출발한 시위대가 박곡동(朴谷洞)·괴산동·마전동(馬轉洞)·기도동·창길동을 지나며 시위대가 늘어났다. 창길동을 지나는 시위대에 합류하여 만세를 높이 외치면서 신월동까지 행진하고 귀가하였다. 3월 19일 도리원시장(桃李院市場) 장날을 맞아 더 큰 시위가 계획되었다. 이양준(李良俊) 등 시위 주도자들은 도리원 장날에 도시락을 가지고 도옥동(都玉洞) 하단(河端)에 집합할 것을 알렸다. 이에 19일 오전 8시 경 주민들에게 시위에 나갈 것을 권유하면서 창길동 주민 50여 명을 인솔하여 시위 장소로 향하였다. 정오 즈음 본격적으로 시위가 시작되어 창길동 주민들과 함께 시위대에 합류하였다. 시위대와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괴산동·도옥동·신안동을 거쳐 봉양면(鳳陽面) 사부동(沙阜洞)까지 열을 지어 행진하였다. 시위대가 봉양면에 이르자 인원은 1,000명을 넘어섰다. 이 소식을 듣고 급히 달려온 일제 경찰과 군대는 시위대를 향해 무차별적으로 총격을 가하였다. 이 총격으로 1명이 사망하고 10여 명이 부상을 당하였다. 이로 인해 시위대는 강제로 해산되었고, 이 과정에서 추격을 받다 붙잡혔다. 1919년 5월 10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그해 6월 26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홍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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