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인채
全仁采1902. 8. 1 ~ 1970. 2. 1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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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2) 1902년 8월 1일 전라남도 순천군(順天郡) 동초면(東草面) 신기리(新基里, 현 순천시 낙안면 신기리)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전인채(全麟采)이다. 1919년 4월 9일 벌교면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1919년 4월 3일 같은 신기리의 김천근(金千根)의 집에서 안응섭(安應燮)·전평규(全平奎)의 주도로 조직된 위친계(爲親契)에 가입하였다. 계원은 모두 33명이었다. 위친계는 독립운동을 목적으로 하는 이팔사(二八社)의 위장조직으로서 “부모의 사망 때 계원끼리 돕는다”를 표방하였다. 그러나 실제 이팔사는 “우리들 청년은 국파군망(國破君亡)한 이때를 당하여 일사보국(一死報國)하자”는 취지로 조직되었다. 4월 8일 계원인 한흥조(韓興祚)의 집에서 위친계원 전원과 함께 “기회를 보아 전남 보성군 벌교면 벌교리 시장에서 독립만세를 외친다”는 내용의 서약서에 서명하였다. 4월 9일 보성군 벌교면 장좌리(長佐里) 아래 장터에서 계원들과 함께 헌병의 제지를 뿌리치고 준비한 태극기를 휘두르면서 독립만세를 외치다가 붙잡혔다. 1919년 5월 2일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장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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